* 호민.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투리는 고증따윈 1도 없는 픽션입니다...



아스팔트를 녹일 기세로 태양이 이글거리던 한여름이 지났다. 

태풍 소식이 가시자마자 쏟아내리던 빗줄기로 습기차던 장마도 지났다. 

곧, 찬 바람이 불겠지. 가을이 오겠지. 

우리의 사랑도 그랬다. 




늦여름의 하모니

(150704 #동방신기_저녁_60분, 키워드 '나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아직 중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다. 아직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더 좋아서, 학교만 끝나면 근처 산을 날래게 타며 재미나게 놀러다니던 좋을 때. 자랑은 아니지만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이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음"이라고 적어줄 정도로 주변에 따르는 친구나 후배들도 많아서, 골목대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인지 할배랑 친하던 심 영감네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손주가 혹여 시골에 적응 못해 사고라도 날까 걱정하던 끝에, 나를 그 손주로 돌볼 상대로 낙점하고서는 할배를 통해 그 부탁을 전해왔다. 



몸이 약해서 요양 겸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그 심 영감댁 손주는 퍽이나 예뻤다. 얼굴도 그렇지만 성격도 좀 유약해서 그렇지 밉상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인사 나누기 전에는 마, 서울 살다온 새끼가 다 그렇고 그렇겄지. 하고 편견 갖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 제가 서울 살다 전학온 아를 본 거이 갸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머스마고 계집애고 어찌나 성격이 까칠하던지. 5반의 머스마는 내신 때문에 부러 시골 학교로 왔대는데 그래서 그런가 아주 샌님이다. 좀 놀고 있을라치면 너넨 공부 안하니이, 하면서 산통을 다 깨놓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3반의 서울에서 온 계집애는 전교생이 다 아는 재수탱이다. 전학오자마자 제 소개에서 아버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고 아주 싫은 티를 풀풀 날리더니 애들 노는 걸 보고 어머 야만인들, 하며 얼굴을 찌푸리지를 않나, 별로 탐나지도 않은 걸 갖고 와서 느이 집엔 이건 없지, 시골이니까. 하며 잘난척 재질 않나. 



그런 애들을 겪어봐 그런가, 심 영감과 우리 집 영감이 교류가 많은 고로 그 아이 오면 잘 챙겨주란 심부름을 처음 들었을 땐 탐탁찮았던 것이 사실이다. 말이 그냥 돌봐주는거지, 옆에 딱 붙여 데려다녀야 할텐데 얼마나 행동반경이 제약되겠냔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산이며 들을 쏘다니며 놀았는데. 게다가 그런 애가 성격까지 나쁘면? 아나, 욕보겠구만. 그래서 사실 좀 반항도 시도했다. 



"나가 왜 그 아를 돌봅니꺼?"



삐딱하게 물었다가 할배한테 머리를 한 대 맞았다. 거 영감. 나이 들어도 기력은 참말 정정하시다. 나이도 비젓한데 친하게 지내면 거시기에 곰팡이라도 핀다더냐, 배라먹을 자식아! 하고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하면서 저 버릇없는 손자 때문에 죽겄다고 에고에고 소리를 내는데. 둘 중 하나만 하시지 그래요 할배. 목청도 손속도 쌩쌩해서 죽것다 소리 해봤자 설득력이 없잖습니꺼. 여튼 그 난리에 에라 모르겠다고 덥썩 제의를 승낙해버렸다. 싱글싱글하며 할배는 진작에 그랬어야지, 하고 연방 고개를 끄덕였고. 그로부터 이틀 후에 나는 그 애를 소개받았다. 심 영감댁 손주, 창민. 심창민. 민이. 창민이. 



"그리고 야는 - ."

"내 소개를 왜 할배가 합니꺼. 반갑데이. 나는 정윤호라 한다. 니, 나보다 두살 어리다 하던데 맞나?"



맞아요, 윤호형. 하고 배시시 웃는 아를 보니 그 뭐랄까 속이 참말 간질간질해서. 처음엔 말투 때문인가 싶었다. 서울 아들은 말투가 기집애들맹키로 억수로 나긋나긋항게. 근데 말을 안 하고 있어도 그랬다. 원체 성격이 얌전한지 소개가 끝나자마자 입 꼭 다물고 뭐라뭐라 떠드는 할배 설교를 들으며 고개만 꼬닥꼬닥 하고 있는데, 그 별거 아닌 끄덕거림에 자꾸 눈길이 가설랑은. 간질간질하고 뭐를 꼭 해야 할거 같은게. 아 이게 무슨 기분이람. 원인 모를 초조함에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했다.



뭐 말을 해야 할 것은 같은데, 무슨 말을 해얄지도 모르겠고. 또래들이고 어른들이고 "거, 윤호는 말 참 잘하는구나. 나중에 대통령이라도 되겄다!"하고 칭찬만 들었었는데 이 꼬맹이 앞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어서. 어쩌지, 어쩌지. 어머니가 알면 기겁을 하며 등짝을 팡팡 치겠지만, 운동화 끝이 다 닳아질 정도로 바닥에 끝을 힘주어 직직 긁으며 고민했다. 운동화의 희생 덕분인지, 반짝 하고 머리에 애가 재미나게 볼 것이 생각났다. 



"민이라 캤나. 니, 나랑 재미난 거 보러 안 갈라나."



말이 질문이지 거의 그냥 같이 가자는 윽박지름이었다.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손을 잡고 나섰으니. 뒤에서 할배가 저저, 그 아 몸 약하다 안캤나! 하고 목청을 높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할배, 나도 그 정도는 안단 말이지? 그래 말 안해도 딱 봐도 사슴맹키로 눈도 크고 목이며 팔다리도 가늘가늘한게 걸어다니는게 신기할 정도로 연약해보이는구만. 이상한데 안 끌고 간다니까, 참말로. 무성히 우거진 풀숲을 가로지르면 더 빠르겠지만 혹여 그 가는 다리에 벌레라도 물릴까 빙 돌아서 산길을 탔다. 되도록이면 평탄한 길로 갔는데도 아 호흡이 가쁘다. 


"많이 힘드나."

"괜, 후우....괜찮아요. 윤호형."

"힘드나본데. 니, 업어주까."


괜찮아요! 저 키도 크고! 눈이 똥그래져서는 손을 빠르게 흔든다. 하이고, 그런데선 또 지도 고추달린 사내놈이다 이거지? 킥킥 웃으며 속도를 조금 늦췄다. 파바박 하고 뛰어다니던 길을 이렇게 느릿느릿 걷는 건 좀 답답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지루하진 않았다. 서울은 차도 많고 건물도 많다는데 그거 보다 온 녀석이 시골 풀이며 나무가 뭐가 신기하다고. 그 큰 눈을 동글동글 굴려가며 주변을 살피는게 내게는 더 신기하고 재미졌다. 진짜 사슴 보는 거 같구만. 혹여 들릴까 입 속으로 말을 굴리며 나는 손을 쭉 뻗었다. 



"저그다."


손을 따라 가리키는 방향을 본 꼬맹이이의 눈이 더 커졌다. 헤에, 원래도 엄청 컸구만 저기서 더 커질수도 있네. 근데 신기하긴 신기할거다. 볼 것 없는 시골인 우리 동네에서도 유명한 연리지였다. 분명 뿌리는 다른 두 나무가 서로 엉켜서 한 나무처럼 붙어 자란.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자라서, 나무 크기도 꽤 컸다. 동네 처녀들 사이에서는 이 연리지에 사랑에 대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미신도 제법 돌아서, 나뭇가지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니셜을 적은 리본이 조롱조롱 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나무를 키운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되어 그 연리지에 대해 설명했고, 꼬맹이는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며 그 얘길 들었다. 


"신기해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저렇게 누가 봐도 한 나무처럼 보이게 된다는게."

"그렇지? 서로 다른 몸인데 한몸으로 살아간다 캐서 부부나무라고 한다더라.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손 꼭 잡고 와서 앞으로 아들딸 낳고 잘 살게 해주십시오- 기도하고 가는 것도 그 때문이고."



니랑 나랑 손잡고 보러 왔으니 둘이 같이 잘 살자 - 빌어볼라나? 나는 꼬맹이를 놀렸고 꼬맹이는 볼이 빨개져서는 저는 남자라며, 남자끼리 그런거 못한다며 쫑알거렸다. 요 꼬맹이, 창민이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실제로 몇 년 안 가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또 몇년, 



연리지에 빈 게 무색하게 우리는 이별을 앞에 두고 있었다. 




*



사귀게 된 건 별거 아니었다. 몸 약한 창민이를 나는 언제 얘기 듣고 귀찮아 했냐는 듯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주변에서 둘이 사귀냐고 놀려댈만큼. 창민이는 사슴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또 마냥 순하고 얌전한 애는 아니었다. 나나 창민이한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을 내가 한 대 패주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제 나름대로 앙갚음을 할 만치 독기있는 애였다. 그러니까 내가 끌고 다니지 않아도 제 발로 나를 따라올 수 있게 운동도 부지런히 해 몸도 건강히 하고. 하루하루 변해가는 창민이의 모습은 나로 인한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뿌듯한 동시에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결국 창민이가 하는 것은 내가 필요한 이유를 조금씩 없애가는 거였으니까. 혼자서 산을 돌아다닐 수 있고 늘 같이 다니던 연리지를 혼자서도 보러갈 수 있고.



혼자서 서울에 갈 수도 있고. 



몸이 건강해진 손주를 굳이 시골에 둘 필요는 없었다. 외고 갈 성적도 되는데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며 먼 읍내 고등학교로 진학시키느니 서울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창민이의 부모님이 내려와서 심 영감에게 직접 말했다고 한다. 창민이는 그 동안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창민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창민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창민이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멀리, 아주 멀리 가버렸다. 나는 부러 그 모습을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산에 올라 연리지에 돌을 던졌다. 행복하게 함께하기는 무슨. 잘 살게 되기는 무슨. 






*




읍내 학교에 진학했고, 농어촌 전형으로 나는 서울에서도 중상위권의 좀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미팅도 하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그러다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헤어지고. 취업을 해서 돈도 벌고.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았다. 10년 넘게 그렇게 사니 심창민하고 사귀었던 건 어느 순간부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다시 심창민을 만나기 전까지는. 



서울로 먼저 가버린 심창민, 그리고 뒤따라 서울에 간 나. 그러나 우습게도 우리 둘의 재회는 서울이 아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골마을이었다. 서울에 먼저 갔던 심창민이 먼저 시골에 와 있었다. 처음에는 심창민이 아닌 줄 알았다. 나날이 건강하고 예쁘게 피어오르던 애였는데, 눈 밑이 새카맣게 다 죽었고 입술도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무슨 병자라도 된 마냥. 가느다랗던 팔다리는 너무 가느다랗게 변해 안쓰러웠고. 사슴마냥 큼지막한 눈만 심창민인 줄 알아볼 수 있었다. 누가 그런 꼴 하고 있으래, 응? 그러려고 10년 전에 그렇게 날 두고 갔어? 겨우 그러려고? 나는 튀어나오려는 말 하나 하나를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아무 말도 않고 있는 내게 창민이가 먼저 말했다. 오랜만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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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넘겨서 대충 마무리.

분명 뿌리 다른 두 나무가 가지를 얽어 한 나무가 된 연리지는 죽을 때도 두 나무가 같이 말라 죽는다죠. 라고 쓰면 엔딩을 다들 짐작하시겠지. 

술 마시고 쓰느라 또 엄청 지각했네요. 슬기운 받아서 재밌는거라도 나왔으면 좋았을걸 끙 이상한게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