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땅, 물, 불, 바람, 철, 달의 에너지를 운용하는 6개의 마법지파가 존재했다. 마법의 힘으로 세상은 풍요로워졌으나, 흑마녀단처럼 마법을 악하게 하는 존재도 있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마법을 쓰는 사악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세상은 기근과 절망이 넘쳐나게 된다. 

사악한 흑마법을 저지하기 위해 마법사들은 전설 속의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그가 살고 있는 숲에 도착했으나,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그로우 족들이 숲을 지키고 있었다. 둘이 대치하던 상황에서 오즈는 마법사들의 사연을 알고 숲을 열어 그들을 맞이했다. 

오즈와 마법사들은 마법학교 스쿨오즈를 세우고, 흑마녀단에 대항할 새로운 마법을 연구한다. 모두의 힘이 하나로 모아진 순간 모든 에너지를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마법 '태양의 서'가 탄생한다. 태양의 서를 통해 강력한 마법능력을 갖게 된 마법사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통로인 포트를 열어 정의로운 마법을 전파하였고, 인간 세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흑마녀단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만 오즈와 마법사들은 태양의 서로 그들을 추방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도 시기와 욕심, 미움이 넘쳐나게 되자 크게 실망한 오즈는 절망의 숲으로 가려진 스쿨오즈 안 가장 깊은 제단에 태양의 서를 봉인하고 만다. 진정한 마법의 능력을 지닌 위대한 기사가 탄생해야만 풀리는 봉인이었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흑마녀단의 후예들은 호시탐탐 태양의 서를 노렸다. 하지만 모든 흑마녀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기에 누군가는 평범한 삶을 꿈꿨고 누군가는 간절히 사랑을 원했다. 젊은 마법사를 보고 사랑에 빠진 어느 흑마녀는 신분을 감춘 채 마법사와 사랑을 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흑마녀단의 습격에 아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자, 그녀는 감추고 있던 흑마법으로 아이를 구하고 만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체가 드러난 그녀는 영원히 추방되고 말았다.




OZ & OSCAR 
(Hologram Musical 'School OZ' 패러디)




그 흑마녀가 내 어미였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뽑아내 악한 마법을 부리는 흑마녀 주제에, 본인이 사랑에 빠져 버리는 건 무슨 경우냔 말이다. 그것도 첫눈에 반해서. 반한 상대도 좋지 않았다. 외모나 성격이나 조건이 모자라단 얘기가 아니다. 너무 넘쳐서 문제였다. 아버지는, 그룹 오즈의 후계자였으니까. 


대마법사 오즈가 마법을 오로지 절망의 숲에 접한 시티 오즈에서만 허락한 후로 마법은 일종의 특권이 되었다. 대다수의 인간은 마법과 동떨어진 존재였으나, 한 번 마법이 주는 편리를 맛본 마법사들은 쉽사리 마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했다. 마법은 권력과 부를 가장 손쉽게 쌓는 방법이었으나, 그러기에 동시에 권력과 부를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절망의 숲과 멀어질수록 갖고 있던 마법능력은 엷어졌으며, 핏줄에서 마법능력을 가진 이가 태어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고로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절망의 숲 근처에서 거주하기 위해 애썼고, 힘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점점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며 능력 또한 소멸되어갔다. 


그러한 연유들로 대마법사 오즈가 약속했다는 천년의 세월이 흐르며 점차 마법사도 마녀도 사라져갔다. 가문들은 조금 더 많은 부와 조금 더 많은 권력을 위해 가능한 한 더 적은 가문만을 시티오즈에 남기기 위해 애써 왔고, 지금 시티 오즈에 거주하는 마법사와 마녀는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 마법세계의 모든 특권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세습가문들이었다. 그 중 그룹 오즈는 재계쪽에서 독보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문이었다. 


하필 그 후계자에게 반해버린 멍청한, 
가엾은 나의 엄마. 


엄마는 흑마녀인 걸 드러낼 수 없었기에 마법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을 가장했다. 아버지의 가문은 흑마녀만큼이나 평범한 인간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마법능력으로 가문의 부를, 명성을, 권력을 유지해 온 곳에서 마법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을 며느리로 환영했다면 그거야말로 판타지였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버지는 가문을 뒤로하고 엄마와 도망쳤다. ‘도련님’에겐 낯설었을 허름한 오두막집에서의 결혼생활에서 태어난 것이 나였다. 


지금도 나는 그 시기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해가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하루 종일 뛰어 놀곤 했다, 마냥 해맑게. 저녁이 되면 엄마는 “오스카! 와서 식사하렴!”이라고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네에- 하며 쪼르르 달려가면 국자 가득 따뜻한 스프를 떠 주었다. 부드러운 빵을 찢어 스프에 묻혀 야금야금 먹고 있으면, 아버지가 망토의 먼지를 털며 “오스카, 그리고 내 사랑! 다녀왔어!”라고 따뜻한 인사를 전하곤 했다. 맙소사, 지나치게 따뜻한 가정이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꿈같은 가정. 


그리고 어느 날 그 가정은 정말 꿈처럼 허무하게 파괴돼 버렸다. 

나 때문에. 




아직도 나는 생각한다. 내가 평소처럼 나가 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놀고 있는데 갑작스레 비명과 말울음이 들렸다. 뭐야, 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집으로 돌아가려 일어날 때였다. 오스카, 어서 돌아와!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그보다 좀 더 근거리에서 얼굴에 불길한 보랏빛 마법문자가 번쩍이는 마녀 하나가 손톱을 세워 내 목덜미를 붙들려 했다. 


- 어린애의 살내음. 신선하고 향긋해. 마침 마력이 부족했는데 잘 됐지 뭐니. 


명백히 해칠 의도를 품고 있는, 그 거대한 악의에 나는 울었다.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미친 듯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엄마, 엄마아! 외치며 달려갔지만 어린아이의 속도는 한계가 있었고 어느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서, 손 떼.”


엄마의 얼굴에 붉은 마법문자가 일렁이며 빛났고 따뜻한 스프를 만들어주던 엄마의 손끝에서는 검은 오라가 번져나와 나를 붙잡으려던 마녀를 칭칭 휘감았다. 포박당한 마녀가 심술궂게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네년, 동족이었구나! 아하하하! 쩌렁한 웃음소리는 마을을 뒤흔들었다. 인간놀이는 그만하고 얼른 돌아오렴, 흑마녀가 인간인 척 해봤자 흑마녀 아니겠니! 마녀는 낄낄대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고 한 줄기 검은 연기가 되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헐떡거리며 울고 있던 나, 그리고 여전히 얼굴에 마법문자가 떠오른 엄마, 그리고 그 모든 걸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 


이후의 흐름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가문의 힘을 피해 도망쳐 온 곳이다 보니, 시티 오즈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에 마을 주민들은 마법사가 아닌 인간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엄마가 살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들 역시 흑마녀들을, 마법을 증오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정체를 숨기고 이 마을에. 우리 아이들을 다 잡아먹으려고? 아니면 어른들까지 모두? 공포, 증오, 의심, 그 모든 악의들이 뭉클뭉클 엄마를 잠식했다. 흑마법의 원천은 부정적인 감정. 


지나치게 짧은 시간에 말도 안 되게 밀도가 높아진 부정적인 에너지는 결국 엄마 안의 흑마법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제멋대로 엄마 얼굴의 문신이 일렁거렸고 그건 마을 사람들의 공포를 광기로 몰아갔다. 돌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엄마 역시 그 광기에 휩쓸리려 했다. 엄마의 눈이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엄마가 사랑하는, 흑마법을 포기하게 한, 숨기게 한.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낸 엄마의 눈이 크게 떨렸다. 아버지는, 지팡이를 꺼내들고 엄마에게 겨누고 있었다. 


엄마는 그 순간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았다. 마음의 벽이 무너진 순간 광기가 엄마를 잡아먹었다. 통제되지 않은 마법이 엄마에게서 흘러나왔고, 아버지는 방어막을 세워 마을 사람들을 보호했다. 엄마가 마음먹고 공격했으면 방어막은 부서졌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울면서 마법을 난사하고, 난사하고…. 마력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흑마법은 인간의 감정을, 백마법은 자연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 그 원천이다. 그리고 원천없이 쓰는 마법은 생명력을 소모한다. 엄마도 아마 그랬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래 날뛸수는 없었을 테니. 


날뛰는 통에 신발은 어느새 다 벗겨져 있었고, 엄마가 따로 몸을 보호하는 마법을 쓰지도 않았기에 발끝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엄마가 읽어줬던, 빨간 구두 동화가 떠올랐다. 영원히 멈추지 않고 춤추게 만드는, 벗을 수 없는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 결국 사형수가 소녀의 발을 잘라 그 구두에서 해방시켜줬다지. 춤은커녕 걷지도 못하게 된 소녀를 자리에 남겨두고, 소녀의 어여쁜 흰 발을 담은 빨간 구두는 여전히 춤을 추며 멀리멀리 사라져 버린다. 


엄마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울음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그 동화에서와는 달리, 떠나간 것은 엄마였고, 자리에 남은 것은 구두였다. 엄마가 흘린 피와, 엄마가 쏟아붓고 간 막대한 마력에 내가 홀린 듯 보호막을 벗어나 다가갔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빨간 구두’ 동화처럼 피는 마력을 머금고 구두로 바뀌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었지만 – 나는 ‘유품’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걸 차마 줍지 못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아버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뒤쫓지도 않고, 잡지도 않았다. 대신 마법을 써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엄마의 기억만이 아니라, 이 곳에서 살았던 세 가족의 기억 전체를. 그리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가문으로 돌아갔다. 가문에서는 돌아온 탕아를 받아주었고, 나에 대해서는 꺼려하면서도 마법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가문의 식구로 인정해주었다. 그게 가문에서의 유일한 내 존재가치였기에 아버지는 내게 신신당부하곤 했다. 절대로 내가 흑마법도 쓸 수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봤다고 했다. 분명 자신이 만든 보호막은 마력이 없는 사람은 빠져나갈 수 없을텐데, 어린애에 불과했던 내가 그 보호막을 훌쩍 벗어났다고. 그 때 분명히 얼굴에 옅지만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고. 그리고 엄마의 피로, 마력으로 구두를 형상화했다고. 


- 그건 분명히 네 능력이었다. 그리고 백마법은 아니었지. 백마법은 자연 원소의 힘을 빌려 쓰는 마법이다. 원소의 힘이 움직였다면, 같은 백마법사인 내가 흐름을 읽었을 텐데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선언했다. 


- 너는, 흑마법을 썼다. 그걸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된다. 들키면, 네 엄마처럼 될거야. 


그리고 엄마처럼 아버지에게서, 가족에게서, 세상에게서 버림받게 될까요. 어렸던 나는 차마 그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 * *



“어른이 되어서도 질문을 못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웃었고 앞에 앉은 꼬맹이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이해가 안 가. 안 속상해? 넌 똑똑해. 스쿨오즈의 멍청이들은 명백한 오류가 있어도 그걸 숨기고 입을 다물고 심지어 왜곡하지. 당연히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해. 점점 멍청해지고 있어. 넌 그렇지 않아. 그런데 문제를 제기할 수 없고, 그게 네가 흑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들킬까봐서라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불공평하다면 불공평한 건 맞지. 난 내가 흑마법을 선택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있게 됐고, 그 때문에 그걸 들킬까봐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제약을 걸게 됐으니까.”


그렇지만 – 오스카는 웃었다. 


“그 때문에 되게 속상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아. 예전엔 정말 아무데도 말할 데가 없어 끙끙 앓았는데 지금은 적어도 네가 있잖아. 같이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화내주고. 그래서 속상하지 않아.”

“---으읏. 치사해, 너! 그런 말을 하다니!”

“어째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타고 났네, 타고 났어. 천연이 더 무시무시하다니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꼬맹이를 오스카는 듬뿍 애정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첫 친구였다. 스쿨오즈에도 동기들은 있었지만, 그들에게 오스카가 갖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는 건 무리였다. 오스카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버지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오스카가 갖고 있는 모든 의문과 감정들을 털어놓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카는 외로웠다. 내도록 혼자여서. 흑마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스카는 흑마법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했다. 백마법사 가문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백마법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파고 들면 들수록 이상한 점이 생겨서. 그러나 그걸 질문할 수는 없었다. 마법의 역사와 체계는 이미 잘 정리되어 전해지고 있었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흑마녀들이 주장하는 ‘사도’에 넘어간 배반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흑마녀들과 관계성이 없다는 사실을 떠나, 오스카가 흑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 


그래서 더 의심이 생겼을 때 그걸 부정하려 애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의심을 해갈하기 위해 자료를 더 뒤지면 뒤질수록, 이상한 점은 점점 더 발견됐다. 가장 처음 갖게 된 의문은 그것이었다. 교과서에 쓰여있는, 하지만 정확성이 의심되던 문장.


「인간들은 마법을 믿지 않거나 전설로만 알고 있지만, 마법은 분명 존재해 왔다. 약 2천여 년 전 스쿨오즈가 처음 만들어진 그 날부터.」


스쿨오즈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2천여 년 전. 마법사들의 요청에 응답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은거지였던 절망의 숲 밖으로 나오고, 흑마녀단에 대항할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세운 학교가 스쿨오즈였다. 그리고 거기서 등장한 것이 ‘태양의 서’였고. 태양의 서는 기존 마법과는 다른 더 강한 마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도 분명히 마법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은거해 있던 오즈가 나타나기 전에도 흑마녀단이 있었고, 흑마녀단은 기존 6원소의 마법과는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고 했고. 


그런데 왜 교과서에서는 마법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을 스쿨오즈가 처음 만들어진 그 날부터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오류일까, 혹은 다른 이론을 통해 해결이 되는 걸까. 교과서를 좀 더 열심히 분석한 결과, 얻은 것은 해결이 아닌 더 많은 오류였다. 분명히 기존에도 6원소 마법이 존재했다. 연금술이라던가, 수학 연산을 이용한 마법도 있었다. 그런데 오즈가 태양의 서를 만든 이후로, 태양의 서 봉인과 함께 마법 능력이 제한되어 버렸다. 마법을 쓸 수 있는 범위도, 그리고 마법을 쓸 수 있는 기간도. 천년의 약속이 그것이다. 태양의 서가 아무리 가능하다 해도 기존의 마법도 있는데 왜 시티 오즈를 떠나면 마법 능력을 발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버리는 걸까? 


흑마녀단으로 인해 기근과 절망이 넘쳐났기 때문에 대마법사 오즈를 찾아 흑마녀단을 물리치려고 했다는데, 왜 흑마녀단을 물리친 다음에도 기근과 절망이 다시 발생한 걸까. 


“여기서 나는 흑마녀단이 정말 기근의 원인이었을까를 의심하게 됐어. 그게 역사 속 수많은 오류를 고칠 수 있는 단서가 아닐까 했거든.”

“그런데? 왜 밝히지 않았어?”

“밝힐 수가 없었으니까. 교과서에는 흑마녀단을 물리친 태양의 서의 특징에 대해 쓰여 있었어. 봉인되었기 때문에 천 년이 지난 지금 그 정확한 위력은 가늠할 수가 없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건 ‘포트’의 존재라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에너지를 자유롭게 흩뿌릴 수 있게 해 주는. 흑마녀단은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기에 마법사들의 강력한 자산이었다고 하지. 물론 지금은 봉인으로 인해 포트 생성은 불가능하고, 기존에 만들었던 포트를 찾아야만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말이야.”


오스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에너지를 모았다. 


“그런데, 나는 포트를 만들 수 있어. 거기서부터 완전히 혼란스러워진 거야. 흑마녀단은 만들 수 없다는 포트, 흑마법을 쓸 수 있는 나. 그런데 흑마녀도 백마법사도 현재에는 만들 수 없다는 포트를 어떻게 생성할 수 있는 걸까.”


오스카는 다시 손을 내려 에너지를 흩어지게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렸어. 이 마법사 세계의 역사도, 법칙도. 모든 의문을 꾹 누르고, 그저 교과서를 달달 외워 오류고 뭐고 고대로 읊어대니 모범생 소리를 듣게 됐지만…. 연금술이나 수학 마법, 인간들의 과학을 주특기로 삼은 것도 그 이유야. 가문에서는 백마법을 쓰라고, 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냐고 잔소리를 해대지만…나 스스로가 내가 믿는 마법에 확신이 없는걸.”


꼬맹이는 다 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서투르게 팔을 벌려 오스카를 끌어안았다. 꼬맹이 주제에. 작은 품은 제법 넉넉하고 따스한 체온을 전해 왔고 오스카는 어쩐지 눈물이 울컥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별 말씀을.”

“아니, 정말이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 아닌데.”


뭐라고? 잘 들리지 않는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 오스카에게 꼬맹이는 괜히 으르렁댔다. 몰라, 두 번 묻지 마! 아하하, 하고 시원하게 웃은 오스카가 장난스럽게 꼬맹이를 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뜻밖의 기습에 어라? 하고 멍해진 꼬맹이가 정신을 차리고 짜증을 내기 전에, 오스카 역시 꼬맹이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곤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흘렸다. 


“나는, 그러니까 너를 되게 좋아하는데.”

“…읏. 반칙이라니까.”

“너는 왜 이름도 안 알려줘, 아직까지?”

“…….”

“물론 이름같은 건 상관없다고. 네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 것도 나지만.”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걸. 이러다 정말 영영 모르게 되어버릴까봐 불안해져서 그래. 이해해줘. 


“졸업을 하면 나 안 볼 생각이야?”


누워서 눈을 감아버린 오스카의 머리를 가만가만 꼬맹이가 더듬어 왔다. 그러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 때 오스카는 너무 외로웠다. 죽고 싶을 정도로. 대담하게도 절망의 숲 한복판까지 와서는 누워버렸다. 흑마녀들이 부리는 망령이 저를 잡아갈지도 모르는데도, 마기 때문에 여느 숲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데도. 그렇게 멍하니 누워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아닌, 보드라운 꼬맹이의 손이 머리를 만져왔다. 


- 누구야?

- 너야말로 내 숲에는 무슨 일이야?


누워있다 허리를 일으켜 앉으며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맹랑했다. 내 숲이라니, 여긴 절망의 숲인데? 흑마녀의 자식인가? 라고 하기엔 소년에게선 어떤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자그마한 얼굴, 또렷또렷한 생김이 녀석 크면 여자 깨나 울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얼굴값을 하는 것인지 녀석은 영 말이 짧았다. 한참 어려보이는 데도 툭툭 반말을 하지 않나, 영 알 수 없는 말을 하지 않나. 그런데 이상하게 녀석이 편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니까, 자기도 남들에게는 영 이상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말해버렸다.


“네가 이 숲의 주인이라고?”

“응.”

“여기 절망의 숲인데?”

“맞아.”

“하하, 재밌네. 그거 알아? 난 흑마법을 쓸 수 있어.”


농담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며 진실을 말했다. 상대방이 진담으로 듣고 정색한다면 너도 절망의 숲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넘길 생각으로. 하지만 녀석의 반응은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그런데?”

“응?”

“네가 흑마법을 쓸 수 있는게 여기 들어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태양의 서 찾아서 흑마녀단한테 주려고 온 거야?”


아아니, 그럴 리가. 손을 내젓자 꼬맹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더더욱 설명이 안되는데 그 말은 대체 왜 한 거야? 무슨 바보 취급 하는 말투인데, 이상하게 그게 편했다. 꼬맹이는 자길 흑마녀의 아들로, 숨겨야 할 존재로, 모범생의 거짓된 모습을 가장한 자신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그냥 제 숲을 침범한 눈앞의 존재. 그것뿐. 그 감각이 신기해서, 오스카는 제 인생에서 가장 돌발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너랑, 친구하고 싶어서 왔다면 어떻게 할거야?”


꼬맹이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뭐야? 하는 당혹, 이것 봐라? 하는 의아함. 뭔가 추억이라도 있는지 그리운 눈빛을 하다가 - 


“그래. 나쁘지 않겠지.”


내 이름은 오스카야, 라는 말에 내 이름은 비밀. 언젠가 마음 내키면 말해주지. 라고 대답하며 맞잡아 오던 꼬맹이의 손은 따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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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즈 뮤지컬은 2차창작하기 좋은 거 같습니다 왜냐면 설정구멍이 많아서 구멍 채우는 맛으로....? ㅋㅋㅋㅋㅋㅋㅋ
단편에다가 설정만 꾸역꾸역 채워넣다보니 별로 재미는 없네요'ㅅ';; 그렇지만 뭐 써서 올린지가 너무 오래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