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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신기(윤호, 창민) 중 한 명이라도 미워하는 곳으로는 데려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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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윤호, 무대 위의 철학자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는 유노윤호를 만났다. 그가 직접 준비한 '85번가' 모임의 파티 시작 5시간 전이었다. 파티 기획자, 음향 및 조명 감독, 음식을 준비할 셰프와 열띤 의논을 마친 후였다. 분주한 열기를 식혀줄 과일 주스 한 잔과 함께 그와의 대화는 시작됐다. 사실 놀랐다. '유노윤호와 정윤호의 상관관계'로 시작된 인터뷰는 점차 삶에 대한, 아니 인생에 대한 담론으로 발전했다. 마치 무대 위에서 뛰놀며 사유하는 철학자를 앞에 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마이클 잭슨을 가슴에 담고 광주 호수공원에서 한판 춤사위를 벌이던 소년의 역사이자 철학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생각을 달리하면
더 긍정적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시아 최고 그룹의 리더를 10년째 맡고 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감회가 꽤 클 거다.
그룹의 리더를 맡으면서 내 자신이 가장 많이 변화한 것 같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던 친구들을 모아 두었으니, 처음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도 쌓이고, 이럴 때는 양보하는 것이구나, 또 이런 건 좀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인간으로서 오히려 더 성장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하다. 
뒤돌아봤을 때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모든 일이 감사한 것은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는 점이다. 많은 것이 보이더라. 특히 함께해온 스태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유노윤호와 정윤호의 상관관계는 어떤가?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굉장히 빨리했다. 그래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유노윤호는 애늙은이처럼 행동하는 부분이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역시 사람을 대하는 곳이다 보니, 이럴 때는 양보하고, 부분은 좀 더 고집을 피워도 된다는 점들을 빨리 알아차린 것 같다. 하지만 정윤호라는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에서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유노윤호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꽤 의미심장하다. 정윤호의 시간은 멈췄고,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가 훌쩍 자라난 것이니까.
유노윤호라는 아이는 아무래도 많은 대중을 상대해야 하고, 일도 많다. 또 리더라는 이미지도 있다. 그러나 정윤호는 꽤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둘 다 아주 긍정적인 성격이라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무수한 기억의 편린이 존재할 거다. 그중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공연인 것 같다. 난 무대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자리잡은 건 창민이와 듀엣으로 처음 SMTOWN 무대에 섰을 때가 아닐까 싶다. 동방신기가 공백 기간을 거쳐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의 힘만으로 무대를 채운다는 생각은 꽤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우리 둘의 인생에 쏘아 올린 새로운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이었고, 다시금 신인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객석에는 엄청난 수의 팬들이 있었을 거다. 어땠나?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두려움이 싹 가셨다. 그때부터 동방신기는 기존에 수립한 기록들을 계속 경신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도쿄돔 공연의 기록, 일본 투어 85만 명 동원 기록 등등. 우리가 우리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줄 알았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그 첫 무대가 이 투쟁의 원동력이었기에 결코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기억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아마 일본 도쿄돔 무대에 섰을 때가 아닐까. 그 때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울어봤다. (그전에는 무대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나?) 대상을 받고도 울지 않았다. 그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이기도 하다. 최고가 되었을 때 울겠다는 약속. 매번 울컥하는 감정은 있었지만 운 적은 없다. 당시 그 무대에서 눈물을 흘렸던 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단지 노래뿐만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인으로서 내가 받은 많은 것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무대였기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르는 일, 감당하긴 힘든 일이다.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하나의 산, 고향에 있는 무등산을 최고의 정상이라 가정해보자. 아버지는 그 정상에 올라야지 또 다른 산의 정상이 보인다고 항상 말씀해주셨다. 거기서 백두산이 보이면, 무등산을 내려와 평지에서 다시금 백두산 정상을 향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 연속되는 일이다. 중간 정도에선 구름과 안개로 다른 산의 정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인생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동방신기의 활동 중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연습생 기간이 길었지만, 동방신기는 1집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한 번의 정상이었다. 일본에 처음으로 가서 신인의 마음가짐을 가졌다. 다시 평지였다. 무등산은 오른 셈이었다. 다음 백두산을 오르고 내렸다. 지금 우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중이다. 조금씩 오를수록 더 넓은 세상과 더 높은 하늘이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럼 다음 목표는?
지금 살짝 산을 내려와 다음 목표를 바라보는 중이다. 이제는 산 자체를 만들어보고 싶다. 아마 그건 내 인생일 것이다. 음악일 수도 있고, 친구들과의 교우일 수도 있다. 또 음악적으로 아티스트 유노윤호, 신인 배우로서의 정윤호 등등.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 갈 산이 아닐까 싶다.
 
지금껏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이다.
뮤지션은 사랑을 받아야 만개하는 직업이다. 사랑이란 받다 보면 그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졌나? 
동방신기 데뷔 때부터. 2006년쯤 좋지 않은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를 싫어할 수도, 또 내가 피해를 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시간이 있으면 항상 많이 걷는 편이다. 그 걸음 속에서 많은 사람을 보게 된다. 돈을 떠나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음을 깨닫는다.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 있는 얼굴도, 따르지 않는 보상에 슬퍼하는 얼굴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졌으면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진다.
 
'초심을 잃지 말자'가 신념인가?
지금도 광주에 가면 호수공원(쌍암공원)에 반드시 들른다. 특히 힘들고 고민이 많을 때 많이 찾는다. 10대 시절 그곳에서 춤을 추던 나는 막막한 심정이었다. 지금은 뭔가를 이루었음에도 또 큰 일이 있고, 생각할 것도 많아진다. 그럴 때 '뿌리로 돌아가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하던 친구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는 거다. 그냥 춤이 좋아서 춤만 추던 그 시절을 말이다.
 
이제 동방신기는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연륜 있는 선배가 됐다. 후배들과 인터뷰할 때면 동방신기 유노윤호 선배가 롤모델이라는 이들도 많았다.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어떻게든 노력하면 미묘하게라도 실력은 향상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챙길줄 알면, 100퍼센트 발휘될 실력도 200퍼센트 이상 발휘된다. 우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니 거기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즐길 땐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다시 오지 않으니까. 결론적으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인생이 즐거울 것 같다.
 
그래도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면 위기감도 들 것 같다.
언제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지 다른 누구와 경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신기한 게 난 다른 연예인을 보면 "와, 연예인이다"라며 신기해 한다. 그래서인지 그냥 나 자신과 싸울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활동할 때보다 시스템도 향상됐고 능력도 뛰어나다. 그에 맞서려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 이 친구 잘하네?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무대에서도 열심히 노는 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달리하면 더 긍정적이 된다.
 
연말을 앞둔 시점에서 동방신기 유노윤호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진심도 정리해보자.
이제는 팬들과 더 돈독해진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느끼는 건 팬들이 동방신기의 또 다른 멤버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함께 울고, 서로 느끼며, 같이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떨 땐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유노윤호의 또 다른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게 바로 팬들인 것 같다.
 
동방신기는 엄청난 팬을 가진 그룹이다. 혹 10년 동안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팬은 100명, 아니 1000명까지도 다 이야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팬을 만나면 오빠처럼 이야기하는 편이다. 사무실 앞에 자주 오는 학생이 있으면, 무리해서 오지 말라고 한다. 공부 다 하고 오라고. 팬은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우리를 응원해주는 만큼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악영향을 끼치고 싶진 않다. 생각이 자꾸 그렇게 바뀌더라.
 
이제 201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뮤지션 유노윤호는 올해 마지막 날 어떤 생각을 하며 잠이 들고, 어떻게 새해를 맞이할지 궁금하다.
현실적으로는 활동 일정이 있으니 정신없을 것 같다. 매년 그랬으니까. 만일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지난 1년을 되돌아볼 것 같다. 사실 홀로 있을 때 천장을 보며 스스로 반성하는 편이다. "그래도 올해 뜻깊게 잘 보냈다"가 될 수도 있고 "뭔가 아쉬운, 때로는 찝찝함이 남은 한 해였다"고 후회할 때도 있다.
 
미리 반성을 해보면 올해 아쉬운 건?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가족이다. 항상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올해 처음으로 어머니 생신날 연락이 늦었다. 마침 해외 일정이 있어 시간을 제때 못 맞췄다. 다녀와서 바로 다 해드렸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유노윤호에게 삶의 원칙이 있나?
내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몇 가지를 놓치지 않으려 언제나 메모를 해둔다. 그게 삶의 원칙일 것 같다. '선택을 후회하지 마라'. 이게 제 1의 원칙이다. 선택 전까진 고민을 많이 해도 된다. 하지만 한 번 선택했으면 결코 후회하지 말고 몸부터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원치 않은 결과가 도출되더라도 사무치게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유노윤호의 원칙이며, 인간 정윤호의 인생 철학이기도 하다.


 

인생은 주변을
살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거죠. 







 

10년이란 세월, 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정상에 있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다.
동방신기는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고, 지켰고, 오르고, 다시 올랐다.
마치 쇠가 담금질되듯, 그 시간들은 두 남자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이제 인생을 사유하고, 주변을 돌본다.
철학자와 젠틀맨은 동방신기라는 이름 아래 가요계의 역사를 새로 썼고
이제 일가를 이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