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현 시대의 아이콘이다. 수많은 청춘이 그 빛을 좇는다. 어쩌면 아이돌은 시대의 갈증을 채워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유노윤호는 그 아이돌의 정점에서 10년여 동안 군림했다. 그에게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을 물었다. 그러자 한없이 긍정적인 한 청년의 꿈이 튀어나왔다.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지만 세계 평화만큼 긍정적이었다.
“그런 거 좋아합니다.” “자, 그럼 가볼까요?” “괜찮나요?” 촬영 중간중간 구호처럼 유노윤호가 외치다시피 말한다. 착 가라앉은 공기가 휘릭, 순환한다. 정말 구호처럼 잘될 거 같은 기분도 든다. 이것은 분명 유노윤호라는 사람의 성질이다. 어떤 사람은 무겁다. 또 어떤 사람은 날카롭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촬영장에서 함께 있으면 기운이 느껴진다. 저마다 매력이 있지만 일하는 입장에선 활기찬 사람이 좋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다. 고작 몇 시간 남짓 함께하지만 주고받을 시간은 충분하다. 유노윤호는 촬영장에 시원한 무언가를 줬다. 운동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처럼 전신을 찌르르, 관통하는 무엇. 그는 확고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다. 10년 동안 단련된 아이돌의 자세일까? 아니면 10년 동안 정점에 선 한 남자의 성정일까? 어느 쪽이든 10년간 지속되면 그게 참이다. 그가 꿈을 말한다. 보통 때라면 꿈이군, 했을 텐데 이상하게 설득력 있다. 아이돌 제국 한국에서 아이돌이라는 의미가 도달할 한 정점을 그는 꿈꾼다. 그가 앞으로 어떤 아이돌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촬영할 때 보니 성격이 시원시원하다.
일할 때 좀 그렇다. 이왕 할 거면 웃으면서 하는 것이 좋잖나.
웃으면서 인터뷰해보자. 우선 10주년 앨범을 자평한다면?
일단 10주년 앨범을 들었을 때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타이틀곡들이 퍼포먼스적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스윙 쪽으로 내놓았다. 힘도 빼보면서 보이는 음악도 중요하지만 듣는 음악도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우리가 더 갈 수 있겠다고 느낄 수 있는 음반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70점 이상 주고 싶다.
앨범을 낼 때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앞을 보고 달려가는 스타일이다. 앨범을 만들고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긴장하지 않는데, 무대에 서면 딱 긴장된다. 사람들이 보고 판단하니까. 하지만 그 긴장감을 즐긴다. 그럴 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 무대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다.
확실히 활동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여줄 건 다 보여줘 부담스럽겠다.
아무래도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아예 다른 느낌으로 앨범을 내기 때문에 보통 가수와 달리 두 배 세 배 콘셉트가 소진된다. 동방신기라면 뭔가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니 부담감은 있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이 있어야 원동력이 생긴다. 거기서부터는 생각의 차이다.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 이번에 죽이는 것 만들어보자고 할 때 난 약간 꼬맹이, 개구쟁이같이 변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다. 틈틈이 수첩에 써놓은 아이템들을 이야기해보기도 한다.
나도 기자 생활을 10년 정도 했다. 그 사이 그만두고 싶거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사람이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난 포기란 단어를 모른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내는 성격이다. 이왕 할 거면 오래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만 추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상대에게 내 메시지나 기분을 전달해 내가 꿈꿔온 것을 함께 꿈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했다. 2집 때인가, 이런 것을 같이 나누는 무대를 만들어가자고 생각했다.
2집 때면 빨리 느끼고 꾸준히 이어 나갔다.
하루는 아파서 무대에서 대충할까, 생각했는데 그게 다 관객에게 전달되더라. 그때 느꼈다. 또 하루는 남자 관객이 편지를 줬다. 어린 일본 관객인데 ‘나는 언젠가 형처럼 되고 싶다고, 형처럼 희망을 주고 싶다’고 썼다. 그 말이 쿵, 다가왔다. 다른 나라 사람인 데다 남자가 남자를 존경한다고 표현한다는 것이 힘든데….
울컥했겠다.
그 말 하나를 마음에 담고 해나간 거 같다. 그러니 일단 조금씩 바뀌더라. 작년에 85만 명이 우리 공연을 본 비결이 그런 자세로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쪽 일보다 더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게 이 일이었기에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이클 잭슨도 그랬기 때문에.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
사람 관계는 잔정이 많은데 목표에 관해선 한 번 뱉거나 행동하면 그때부터 그대로 간다.
시작할 때 아이돌로 불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돌로 불린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생각의 자유인 거 같다. 나는 자부심이 있다. 우리처럼 기록을 많이 세운 아이돌이 없다. 잘하는 아이돌은 많지만, 정말 어려운 건 자기 기록을 자기가 깨는 거라고 본다. 또 여전히 아이돌이 지닌 의미인 아이들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좋다. 나중에는 못하잖나. 지금 그 시기이기에 사람들이 아이돌로 불러주는 거고, 그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 아직 어려 보이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하하.
음악적인 부분은 어떨까?
사실 나랑 창민이가 다른 음악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시기가 있다. 한 번에 다 보여주면 더 보여줄 수 없는 날이 빨리 오기에 상황을 본다. 좋은 기회와 좋은 시기에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호칭은 어떻게 불리든 다 좋다. 어떤 분이 아이돌이라고 하면 ‘어, 나 아이돌’, 또 어떤 분이 아티스트라고 하면 ‘오, 아티스트’, 또 쇼를 하는 것 같다고 하면 ‘쇼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나름대로 희극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시원시원하게 말하니까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상하게 말에 흡인력이 있다. 그런 어조로 뭐든 하자고 하면 누구든 따라가겠다.
요새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잡을 것은 더 확실히 잡으려 한다. 그랬더니 내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왕 영향력을 줄 거라면 재밌게 가자. 그리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정말 양보하지 말고 이야기하자. 대신 책임은 확실히 지자.
어떤 부분을 내려놓았나?
예전에는 ‘정말’ 열정적인 아이였다. 다 열심히 했다. 파이팅 넘쳤는데… 너무 파이팅 넘치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좀. 어떤 때는 파이팅 넘치지 않는 상황이 있잖나. 그러니까 그 파이팅을 사람들이 못 쫓아올 때 내려놓는 능력이 조금씩 생겼다. 연륜이 생겼다고 할까?
그 나이대에 그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조율한다는 건 대단하다.
내가 운이 좋다. 인복이 많다고 할까. 함께 다니는 매니저 형이 나와 쌍으로 바보 원, 바보 투로 불린다. 바보란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들은 이야기인데, 산에 올라갔다가 앞에 더 높은 산이 있으면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 산이 그렇게 생겼으니까. 산과 산을 건너뛸 수는 없는 거다. 인생이라고 봤을 때, 다른 산처럼 다른 목표가 생겼을 때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하는 거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올라갈 때부터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갓길이 있지 않을까, 올라갈 수 있을까, 못 올라가면 어떡하지 등등. 바보는 그냥 올라간다. 그러다 보면 도달하고 절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내가 소년 같은 부분이 좀 강하다. 계속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내가 운이 좋다는 거다. 아직까지 꿈을 꿀 수 있으니까.
음악 말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은 듯하다.
최종적으로 학교를 만들고 싶다. 내가 다른 연습생보다 좀 힘들게 올라온 경우라 그런지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 또 우리나라에 예술학교가 있지만 연예인을 서포트하는 걸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그게 마지막 꿈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잭슨보다 한 살 더 먹고 아티스트로서 은퇴하고 싶다. 앞으로 배우는 배우대로 하고, 연출도 하고 싶다. 나중에 공연도 제작하고 싶고, 취미로 발명도 하고 있으니 그것도 계속할 거다.
발명?
내가 스무 살 때인가 스물한 살 때인가 방송에서 발명할 거라 이야기한 적 있다. 그 결과가 3월 초에 나온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변리사에게 넘겨서 진행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사소한 발명이다. 컵을 다르게 만든다거나 하는. 평상시에 이런저런 걸 많이 생각한다. 가령 KTX에 차를 실으면 안 될까? 또는 회전식 주차장으로 전기를 만들 순 없을까? 하는 생각들. 왜 추진하지 않지? 망하더라도 해보면 안 될까?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안 돼도 경험은 되니까. 난 한 번 마음먹으면 될 때까지 한다.
한다면 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면이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이 미쳤다고 그랬다. 이뤄놓은 것이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이제 반의 반의 반 정도는 이뤘다. 처음엔 몰래 기부도 했다. 그러다 어떻게 알려지게 됐는데 그게 또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내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꿈꾸는 것이 어렵고 첫발이 어렵지, 상황이 만들어지면 하게 되더라.
아이돌의 긍정적인 면을 극단으로 확장시키는 느낌이다.
이젠 선배의 입장이 되었다. 선배가 되니 책임감이 생기더라. 우리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수많은 아이돌 후배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선배가 길을 잘 만들어놔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왕년에’다. 왕년에 잘나간 건 그냥 박수 쳐주면 끝이다. 쭉 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걸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우리도 뭐 사건 사고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그 일을 통해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난 이렇게 했어. 그러니까 너는 더 잘할 수 있어’라고 하고 싶다.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너무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닌가?
아, 그런가?
긍정적인 면이 많을수록 부정적인 면도 그림자처럼 따른다. 그런 건 없나?
어쩔 땐 외롭고 또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부정적인 면이 내게도 분명히 있다. 내 안의 나는 심하게 강한 아이다. 그렇기에 내 안에서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면 부정적인 면이 치유되더라. 기자도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잖나. 어떤 기사를 쓰느냐에 따라서 어떤 에너지를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됐든 간에 좋은 에너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게 생각하고 좋은 것을 주면 더 좋은 에너지가 생길 거다. 특히 남자라는 동물은 말을 뱉으면 반사적으로 말대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뱉게끔 해준다. 난 후배를 만나면 아직도 꿈이 뭐냐고 묻는다. 꿈이 뭐야? 그러면 사람이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인기, 재력, 일에서 확고한 위치 등등 부러운 것 투성이지만 부럽지 않은 건 여자 관계다. 20대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 여자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만나기 쉽지 않겠다.
그런 부분은 최근에 내려놓았다. 다 때가 있는 거 같다. 20대가 황금기잖나. 나도 사람인데 쟤 괜찮다거나 알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해야 할 게 있기에 그것을 먼저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만나면 그 친구도 상처, 나도 상처를 받더라. 예전 얘기를 한다면, 활동할 때 안 사귄 적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진 않고 한 사람을 진득하게 만나봤는데, 내가 내 일을 확실히 못하면 남을 신경 쓰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 배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게 또 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결과가 좋지 않더라. 연애 문제는 나름대로 푸는 방법을 찾았다. 정 외로울 때는 친구들끼리 모인다.
역시 여자 아니면 친구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주축이 돼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다 불러 같이 논다. 아, 건전하게 논다. 볼링 치고 야구 하고 지도에 다트 던져서 꽂히는 데 여행도 가고. 이런 식으로 놀다 보니 사람들이 모이더라.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 나간다고 했다, 하하. 나도 연애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아직 이를 뿐이지.
아, 지금 결혼하고 싶다는 아니고? 난 또….
하하,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내게 맞는 짝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타나면 참 좋게 예쁘게 만나고 싶다. 이런 거 같다. 나중에 만약 정말 이 여자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선택해야 할 거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키고 살 순 없으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지금은 이렇게 동방신기를 만들어왔으니까. 만나더라도 밝히진 않을 거다. 가끔 사람들이 공개 연애할 거냐고 물으면 바로 안 한다고 답한다. 공개 연애가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
가수로서 외적인 부분은 정점을 찍었다. 반면 내적인 부분은 어떤가?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나?
유노윤호의 캐릭터와 실제 정윤호의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유노윤호로 인터뷰하는 거다. 유노윤호란 애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생활하기 시작했다면 정윤호란 애는 고등학생에서 멈춰 있다. 순수하고 꿈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날 일로 만나면 정말 멋있는데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 밝기만 하다고 말한다. 정윤호란 애를 좀 더 멋진 남자로 만드는 게 목표다. 둘이 같은 보폭으로 갈 수 있게. 그래서 친구들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면 점점 정윤호를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잊으면 변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초·중·고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자주 만난다. 심하게 만난다. 그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정윤호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다. 만나면 정말 즐겁다. 그들과 함께하며 연예인이 아닌 정윤호로 행동할 수 있다. 연예인이지만 인생을 많이 경험하고 싶다. 연예인이니까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도 없고, 급기야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는 것조차 힘들다. 연예인을 떠나 남자로서 나중에 나이 먹어서 이런 걸 못하면 좀….
나중에 상실감도 느낄 테고.
그런 사소하지만 생활적인 것 위주로 해보려고 시작했다. 정윤호라는 애가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길 텐데, 사회적 입지가 큰 건 뒤로하고, 혼자서 할 수 있도록 성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내적 갈등이 있었다. 혼자서 뭘 할 거야? 뭘 할 수 있어? 생각하니 화나더라. 오히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형들이 못하는 것도 내가 했다. 그래서 그때 멈춘 정윤호를 다시 키우려고 한다. ‘추리닝’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떡볶이 아줌마와 실랑이도 해보고. 유노윤호 얼굴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 해보니 재밌더라, 하하.
사는 게 심심하진 않겠다.
몸이 힘들긴 하다. 기본적으로 일정이 바쁘니까. 그런데 한국에선 밖에 자주 나가지만 외국에 가면 밖에 안 나간다. 그때 또 여러 가지 많이 생각한다.
10주년 앨범도 냈으니 이제 10년 후도 바라봐야겠다.
10년 후면 거의 마흔이다. 아버지가 남자 나이는 40대부터라고 말씀해주셨다. 50대가 되면 인생을 좀 알고 즐길 수 있으니 20대는 잔말 말고 달리라고. 아버지 말씀처럼 일단 20대는 잘 달려왔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고민이 없어질 거 같다. 무궁무진한 꿈도 가지를 칠 테고. 30대 후반에는 그 꿈들을 구체화해놓을 테니 좀 더 재미있을 거다.
출처는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50959)
'TREE > 인터뷰/화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ARENA37℃ 9월호 고화질 스캔 (0) | 2014.08.10 |
---|---|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2014. 4월호 동방신기 인터뷰 (0) | 2014.03.04 |
GRAZIA그라치아 February second issue 커버스토리 동방신기 (0) | 2014.02.05 |
더 셀러브리티 12월호 동방신기 : 카메라를 든 최강창민 (1) | 2013.11.16 |
더 셀러브리티 12월호 동방신기 : 최강창민, 젠틀맨의 수다 (0) | 201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