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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재시동 이후의 활동으로 읽어보는 동방신기
연구 재시동 이후의 활동으로 읽어보는 동방신기
라이브 아티스트로서 다시 아레나에 도전하는 저의는?
세대교체가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한국의 음악업계에서 10년간 최전선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지는 K-POP팬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강한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를 일본의 음악 팬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안그래도 한번 팬이 되면 그리 간단히 그만두지 않는 일본의 국민성도 있다.
2010년 휴지기를 지나 2사람이 활동을 재개한 것이 2011년. 일본의 팬클럽 회원수는 이 3년간 약 2배가 되었다.
그들의 주변만 보면 음악업계의 위축기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재시동 후 1탄 싱글 Why? 는 약 32만장의 매상을 올렸다. 믿어 왔던 것이 갑자기 붕괴하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노래한 이 작품은 엄청난 기백으로 팬 이외에서도 화제였다.
곡의 파워는 격렬하였고, 활동 공백기를 불식함과 동시에 그룹으로서의 자세와 캐릭터를 분명히 부각하는 역할까지 달성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사운드의 방향성과 가사의 내용도 변화하여 러브발라드가 많았던 이전과 비교하여 중저음의 리듬을 강조하고 남자다움을 내세운 노래가 늘어났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춤 출수 있는 곡조가 많아지면서 신규팬 중에서도 20대를 상당수 획득, 한층 더 두터워진 팬층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젊은 층은 CD를 사지 않는다" 라고 하지만, "라이브" 관해서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Youtube에서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면 라이브에 가보는 그들은 실제 눈으로 본 것을 곧바로 SNS 등으로 전파한다.
직접 접한 압도적인 가창력과 댄스 스킬에 대한 입소문의 파급효과는 상상이상으로 거대한 것이다. 동방신기의 아티스트 파워는 그래서 강하고 흔들림 없다.
변화하는 두 사람의 역할 분담
라이브는 그들의 활동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창민이 노래 담당, 윤호가 댄스 담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최근 3, 4년간 둘이서 절차탁마하여 부단히 노력한 바 실력 밸런스가 점점 고차원적인 길항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 계속 라이브 밴드와 함께 라이브를 해왔던 일본활동에서의 경험이 두 사람의 음악적 가능성을 넓힌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베테랑인 밴드멤버들과 친해지면서 창민은 기타의 연습에 힘써, 관객 앞에서 연주와 노래를 선보일 정도까지 되었다.
한국에서 "빅밴드"를 컨셉으로 내건 앨범을 만들기로 한 것도 "일본에서의 라이브 밴드 공연을 계속 해온 것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윤호는 말하고 있다.
라이브를 축으로 동방신기의 아티스트 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최근에는 작은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2012년의 TONE, 2013년의 2대 투어를 통하여 완벽한 퍼포먼스는 물론, "관객과 함께 즐기고 서로 공감하는 것의 소중함"를 익힌 것인데,
10대 시절 부터 갈고 닦아, 카리스마 유지를 목표로 해온 그들에게 있어 "함께 즐기는" 시점이 가능하게 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작년 닛산 스타디움에서는 이러한 것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났다.
흥분한 나머지 가사가 틀려도 괜찮고, MC에서 버벅거려도 관계없고, 오늘은 축제니까!!- 이렇게 해방된 빛나는 두 사람이 이제까지 없었던 자유와 고양감을 관객에게 쏟아 붓고 있었다.
"만난다는 것"이 음악의 중심이 되면서 매니지먼트도 투어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동방신기는 라이브로 성장한 아티스트이고, 앞으로도 오래 사랑받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프로모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녀간 지역이 이후 얼마만큼 친근감을 가지고 응원해 주는 지는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의 기억도 있다.
4월22일에 첫 공연을 맞이하는 올해의 투어는 아레나 공연장을 중심으로 전국 11개소 29공연이다. 본인들의 희망으로 피재지인 센다이도 포함되었다.
일본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방송(冠番組) 도 시야에 넣다
자, 일본에서 앞으로 동방신기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인터뷰 중에 윤호는 "우리들이 메인인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본인들의 입으로 말한 일본의 TV의 이야기를 들어본 바, 그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한국에서도 TV드라마를 비롯하여 출연 의뢰가 끊이지 않는 사정도 있고하니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스케쥴을 짜기에는 아직 좀더 앞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애석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가장 출연하기 쉬운 음악프로그램 자체가 각 방송국에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동방신기라면 언제라도 나와주었으면 한다"며 문을 열어놓고 있는 음악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에,
남자다워진 두 사람의 퍼포먼스를 가까운 장래에 일본의 음악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TOHOSHINKI의 머리문자 T 를 따라 TONE, TIME, TREE로 이어진 앨범은 앞으로 어떠한 이름이 붙여질 것인가.
활동 재개 시 두 사람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맹세한 것이 있다.
"과거를 넘겠다"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되는 것은 분명 지금부터가 본방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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