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다보면 애들을 다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제멋대로 판단하게 된다. 가끔 그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애들의 모든 말에 관성이 생겨버린다. 고맙다는 말, 기다려줘서 감사하다는 말, 지금 많이 행복하다는 말,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 뻔한 말이다. 그렇지만 뻔하다고 해서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진심이란 근거는 있다. 동방신기가 보여주는 거. 걔들이 보여주는 꿈.


팬은 을이다. 갑이 연예인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것에도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팬은 갑이다. 결국 마음을 접고 떠날 수 있는 권리는 팬에게 있다. 그래서 연예인의 의무는 그거다. 팬이 마음을 접지 않도록, 팬이 사랑에 빠질 수 있던 요소들을 잘 유지하는 거. 그 이미지를 깨지 않는거. 거기서 발전해야 하지, 퇴보하면 안 되는거. 그래서 모든 살아남은 연예인들은 위대한거다. 오래 살아남을 수록 그렇다. 


그런 점에서 동방신기는 참 기적같다. 처음부터 탑에 올라갔다. 그걸 유지하기는 힘들었지만 해냈다. 일본에도 갔다. 긴 공백기로 팬덤이 주춤할 찰나, 일본에서 기록이 터졌다.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정점에서 또 정점을 기록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 시점에서 일이 났다. 그룹에는 아직 최고 중의 최고 이미지가 붙어있는데, 그 이미지를 이제 둘이서 성장 내지는 유지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고 결과적으로 죽으니까. 사실상 동방신기는 죽었었다. 소송과 온갖 음해 속에 동방신기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었으니까. 함께 정점을 만들었던 동료 손에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살해당하고 관뚜껑에 못이 박힌거다.


그걸 뚫고 나왔다, 동방신기는. 둘이 보여준 동방신기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둘이서 만든 동방신기의 슴콘 무대를 보고, 너네 둘이서도 괜찮겠다, 라고 말했다는 이수만의 말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진짜로 둘은 했다. 물론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동방신기를 둘이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으니까.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무게를 버티지 못했던 사람들과 달리, 무게를 감당하기로 한 동방신기는 이제 새 과제를 얻었다. 과거 이뤄놨던 모든 정점과 비교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정점을 넘어서야 하는 것. 모르겠다. 처음부터 정점을 찍으며 승승장구했고, 안착할 시기에 또 한번 방향을 바꿔 상승하는데 성공했던. 그런 과거의 기억과 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나는 그런 압력을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원래 그렇게 가벼운 애들은 아니었다. 윤호도 창민이도. 그리고 그 압력과 싸우면서 동방신기는 한층 진중해졌고, 또 그만큼 패기가 생겼다. 그 압력과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대신에, 우리 둘이 동방신기가 맞다고 당연하지만 누구들에게는 치떨리는 소리를 폭탄처럼 던져준다. 명확한 것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은 명확한 것이 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준비한다. 아이돌이라는 직업 때문에 조금 일찍 어른이 됐을 소년들은, 아이돌들 중에서도 겪은 이가 거의 없을 힘든 경험을 겪으며 어른이란 말도 모자라게 더 쑥 자라 버렸다.


동방신기를 사랑한단거, 다시 태어나도 동방신기 하고 싶단 거. 하루하루 살면서 보여주고 있다, 애들은.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일을 약속한 대로 해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본인들이 말한 그대로다. 열심히, 더 열심히. 지금이 행복하니까. 기다려준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그래서, 데뷔 10년차에도 동방은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 무대도 늘고 있고, 콘서트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고, 안 하던 예능과 드라마도 하고 있고, 팬들에게도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소송 이후 죽어라 욕먹으며 생긴 이미지로 연관검색어까지도 참 욕을 많이 치렀던 윤호는 팬미팅에서 창민이에게 너 오글거린다는 드립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마음에 많이 두고 있던 과거 자신의 실수도, 그게 있었기에 노력해 지금의 자기가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힘을 빼는 여유마저도 이제 가질 수 있게 된 거다. 지인님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러다가 우리 오빠 다음 앨범 내고 예능 나올 때는 해피투게더 그 랩도 예능네타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제가 랩퍼도 아니라 그 땐 되게 어설펐는데 재밌게 봐주셨는지 되게 화제가 되더라고요. 그것도 다 여러분들 관심이라 생각해서 더 노력했어요 막 이런 말" "야 그런말 하면 나 진짜 울어. 그 날이 진짜 우리 오빠 아무도 못 까는 날이야. 진짜 별것도 아닌걸로 욕 다 먹었는데 당사자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아무도 욕 못해. 욕하면 내가 죽일거야" 막 그런. 뭐 솔직히 이런 말 일기라도 써도 되나 싶을 만큼 그게 팬 입장으로도 어처구니 없고 되게 속상한 일이었는데, 그냥 오빠가 편안한 모습을 보며 오빠가 정말 커졌구나 싶으니 그런 얘기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날 팬미팅에서 보여준 오빠 모습 자체가 팬에게는 치유였던 것 같다.


그건 창민이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소년, 나서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관조하는 성격이라 조금 더 적극적이 되도 좋을텐데 - 라는 아쉬움을 남게 했던 창민이는 주토쇼에서 피해의식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다시 태어나도 동방신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연예인으로서의 제 위치도 받아들이게 됐다. 더 발전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우게 된 거다. 표현도 그만큼 늘었다. 아직 어설프지만 예능에서 MC로 옹알이를 하고 있고, 팬들에게도 우리 창민이가 달라졌어요 소리가 나올 만큼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귀까지 빨개져가면서 팬들을 심장이라고 말해 줬다. 팬미팅 마지막에, 사진을 찍자고 하면서 창민이가 윤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윤호가 아닌 창민이가 먼저 그런 걸 제안하는 거 자체가 되게 놀라웠다. 그 후에는 하트 그리자는 제안까지 했다. 정작 제가 제안해놓고는, 부끄러워서 언제 뗄 수 있나 움찔움찔 눈치를 보는게 아직 갈 길이 좀 남았구나 싶기는 했지만서도ㅎㅎㅎ 그냥 그렇다. 동방은 변해가는 중이다. 10년차가 되도 아직 더 변화하고 상승을 꿈꾸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아직 바라는 게 많다. 오빠들이 연예인으로서 좀 더 자각하고 공항에서 수염도 깎아줬으면 좋겠고, 의상도 좀 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 무대에서 예쁜 머리와 예쁜 옷을 입어줬으면 좋겠고, 팬들이 좋아할만한 곡을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래면 더 좋겠다. 스케줄에 있어서 자기 의견을 좀 더 많이 반영했음 좋겠고, 거기서 더 많이 대중과 접할 수 있게 욕심을 부려줬으면 좋겠다. 팬들과 함께 하는 행사도 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기대가 많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연차 높은데 말실수 안하고 사고 안치며 이미지 유지 잘 하고 있으면 됐지 이렇게 바라는게 많아서 되겠냐고. 난 뻔뻔한 팬이니까 그렇다라고 대답해야겠다. 나는 동방신기가 20년, 30년을 넘게 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지금도 단순 유지가 아니라 그룹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과거를 뛰어넘든 뛰어넘지 않든, 과거보다는 동방신기가 현재의 자신을 목표로 더 발전하는 게 보고싶다. 기대하게 만드는 아이돌을 가진, 자부심 넘치는 팬으로서의 소망이다. 동방신기는 팬 말을 잘 듣는 애들이니까, 안 듣는 거 같아도 차근차근 바꿔가고 있는 애들이니까.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기다릴거다. 


내가 기대치가 낮고 다른 사람이 높은 것은 아닐거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르고 그걸 하나의 행동으로 모두 해결해주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테니까.  
더 압도적인 모습으로 동방신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2011년처럼.
높고 낮고 넓고 좁은 모두의 기대치를 아득하게 뛰어넘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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