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촹갤(drizzle), 동행, 트위터



지리할 수도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모처럼 함께 동방신기라는 아름다운 존재들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서였지 싶다. 들어가자마자 VIP석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스탠딩과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무대에 생각보다 침착할 수 있는 것도 그 덕이었을지도. 앞좌석으로 몰려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을까, 오히려 어느정도 떨어져야 무대 전체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무대 장치는 시야를 고려하지 않는 높이였다. 어디서든 잘 보이니 사고나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라는 안내방송이 무색할 만큼.

무대를 열다, 그리고 지배하다

믿기싫은 이야기, 를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창민이는 이쪽으로 올 거야! 하면서 A구역 쪽으로 갔다. 그리고 빠순이의 인권따위 존중치 않는.. 응원모습을 카메라로 중계하던 끝에 불이 꺼지고 영상이 흘렀다. 사실 첫 무대가 지디&탑이고 엔딩이 동방이지 않을까, 하는 카더라가 정설처럼 돌고 있었기에, 동방신기의 글자가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더 미친듯이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다분히 산만한 분위기였는데도, 압도적인 기백이 무대에 시선을 끌어모았다. 익숙한 멜로디, Maximum과 함께 무대에 윤호가 비춰진 순간 이미 관중들은 무대위의 지배자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내가 있던 A구역은 음향장치가 바로 앞에 달라붙어있었고 때문에 하울링이 꽤나 심했다. 쿵쿵대는 비트를 직격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까딱하다간 라이브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이 노련한 지배자들은 걱정한 것이 미안할 만큼, 음향을 압도하는 라이브를 들려주었다.

아이돌의 아이돌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과거에 비해 현재의 동방신기는 많이 변했다. 더 여유로워지고, 더 세련되지고, 그러한 수식어를 떠나서 더 이상 '아이돌 느낌'의 아이돌이 아니다. 그건 그들에게 있었던 '스토리'와도 관련이 있다. 대다수 아이돌들의 노래는 아이돌 그 자신과는 괴리되어 있다. 곡을 받고 그걸 따라부르고 그에 안무를 가미하여 오직 '보여주기' 위한 노래를 하는 것이 아이돌이라면, 동방신기는 이미 그를 한층 뛰어넘었다. 동방신기의 노래는 단순히 보여주기에는 그들이 묻어난다. 온갖 힘겨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비상을 노래하는 맥시멈을 그들만큼 호소력있게 부를 수 있는 아이돌이 과연 있을까. 그건 여기에 동방신기가 있다는 쩌렁한 외침이었다. 윤호의 그 호흡조차 흔들리지 않는 노래와 힘있는 안무가 흡입력을 갖고 순식간에 시선을 잡아끌었고, "츠앙민아!"라는 윤호의 외침과 함께 등장한 창민이는 그 달아오른 무대를 노련하게 쥐락펴락했다.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그들이기에

윤호는 오늘도 '기분 좋아'했고, 창민이는 입때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들떠 있었다. 계속 웃고, 눈을 맞춰주고, 토크에서도 꽁냥꽁냥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후배 가수들을 챙기는 윤호 오빠는 자상했고, 콘서트의 목적에 맞게 G마켓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꺼내주는 것은 어설퍼서 더 와닿았다. 사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주문하긴 할까, 몇번 없었을 것이기에 '모자'랑 '바지'를 사 봤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윤호나, 사실 별로 이용하지 않지만 한 번 써봤다고 하는 창민이 모두 솔직해서 좋았다. 특히나 창민이 같은 경우는, 기분이 들뜬게 확 보일 정도로 위트섞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할게요."라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받는 것부터 유쾌해 웃음을 터지게 했다. 이런 모습을 언제 봤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역시나 이전 콘서트. 창민이는, 참 그렇다. 예능에선 말을 아끼고, 공연에서는 더 신이 난다. 팬들과 직접 교감하는 장소기 때문일까. 무대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감정표현이 커지는 모습에 그가 얼마나 무대를 사랑하는지가 확 와닿았다. 동시에 떠오른 인터뷰, <바빠서 행복하다고> 한 그가 얼마나 일을 하고 싶어했을지 새삼 그 문장이 다르게 와닿아서. 그의 웃음에 지나치게 행복한 한편으로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순간순간 모두 아름다워서

다소 긴 옷이 더워보이긴 했지만 불 대신 폭죽을 썼고, 검고 때로는 푸른 조명은 제법 분위기있었다. 사실 정말로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찍지 못할 만큼 순간순간이 모두 넋을 빼앗아갈 정도로, 무대 위의 두 사람은 아름다웠다. 짧아진 윤호의 머리는 다소 아쉬웠음에도, 타고난 얼굴이 아름다운데다가 오늘의 윤호는 빨려들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건 창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곱슬한 베이비펌으로 <믿기싫은 이야기>를 부르는 창민이의 얼굴은 처연하면서도,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묻어나왔다. 앉아서 팬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는 그들의 무대는 빙글빙글 돌며 서로를 교차해 보여주었고, 그것이 다분히 이건 '합동콘서트'인데도 '동방신기의 무대'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했다. 스탠딩의 팬들이 목이 쉬어라 응원하는 와중에 닿아오는 눈빛은, 정말로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늘만큼 5집활동 이후 창민이가 많이 눈을 맞춰주고, 웃어준 적이 있었던가. 믿기싫은 이야기와 이것만은 알고가 두 곡을 무대 중간에서 부르는 내내 그 조곤하면서도 힘있는 울림이 좋아 죽을것만 같았다.


그 압도적인 지배를 다시금 원하기에

마지막 무대는 왜KYHD 였다. 합동콘서트인데도, 그 네 곡 안에(다른 가수들보다 한 곡 적은 것이 아쉬웠음에도) 기승전결이 있었다. 내가 여기 서 있음을 알리는 오프닝, 그리고 그렇게까지 그들이 '이야기'를 갖게 된, 서글픈 이별의 정한이 느껴지는 믿기싫은 이야기와 이것만은 알고가.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이별' 후 다시금 거듭나는 그야말로 '동방신기'다운 노래 왜KYHD까지 조금도 숨돌릴새 없이 휘몰아쳐 오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독히 압도적이었다. 힘있는 안무와 음 하나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매끄럽기 짝이 없는데도, 오히려 그들은 점점 활기를 띤 공연을 보여주었다. 무대에서 더 살아있었고, 그래서 더 넋을 잃게 만들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그 압도적인 지배의 잔향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엔딩이 아니라 오프닝이더라도, 네 곡만을 불렀을 지라도,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오늘 무대중 가장 능숙하게 무대를 조율한 이들은 단연 동방신기라고. '즐기다' '함께 호흡' '유쾌' 등의 여러 키워드를 붙일 수 있을 만큼 다른 가수들의 무대도 특징있고 좋았지만, 그야말로 호흡을 빼앗아갈 만큼 무대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지배'한 군주로서의 분위기는 오로지 그들의 것이었기에. 다분히 팬심이 섞인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합동콘서트 때 (특히 일본에서) 콘서트를 하고싶다, 고 여러 번 말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 이유를 무대를 보면서 절실히 실감한다. 무대에서 그들은 보다 살아있고 그래서 지배한다. 그 지배에 무릎꿇는 것이 행복하기 짝이 없는 팬이라, 나 역시 소망한다. 단독콘서트, 거기서 두 남신들과 온몸으로 교감하는 날을. / 옥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