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의 삶은 무료하다.
-- 라고 '최초의 뱀파이어'라 불리는 윤호는 생각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자극하다
(150124 #동방신기_전력_60분)
정윤호.
뱀파이어의 세계에도 계급이 있다.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은, 상위 뱀파이어에게 모든 피를 빼앗기고 다시 살아난 '감염된' 존재이다. 이들은 모든 생명의 정수를 빼앗기고 암흑 속에서 강제로 태어난 존재기에 뱀파이어 치고 몹시 약하다. 흡혈을 통해 힘을 보충할 수 있으나, 오래 굶는다면 인간보다 오히려 약해지며 햇빛이나 성수에도 쉽사리 퇴치되고 만다. 물론 쉴새없는 흡혈을 통해 강한 힘을 보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약점이 있기에 그건 사실상 이뤄질 수 없다고 봐도 되는데, 말 그대로 '생명의 정수'를 빼앗긴 자들은 빼앗은 자, 즉 감염시킨 뱀파이어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자살'도 포함한다. 뱀파이어들은 귀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될 만큼 일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염시킨 자'가 책임지고 해당 뱀파이어를 자살시키곤 했다.
감염된 존재 위의 존재는, '재구성된' 존재였다. 인간일 때 가졌던 모든 피를 빨려 생명의 정수까지 빼앗기는 것은 감염된 존재들과 동일했으나, 감염된 존재들과 달리 자신을 흡혈한 뱀파이어에게서 그의 피를 받는다. 피 교환을 통해, 일종의 '부모-자식'과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경우 뱀파이어의 피가 몸을 완전히 재구성해주기 때문에, 감염된 존재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다. 햇빛은 살짝 화상을 입히는 정도에 불과하고, 아주 소량의 피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염된 존재와 재구성된 존재를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은, 섭취하는 식량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감염된 존재는 생명의 정수를 잃었기에, 탐욕스럽게도 피를 섭취하지 않으면 소멸해버린다. 하지만 재구성된 존재는 달랐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뱀파이어가 섭취하는 것은 피도, 생명도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섭취했다. 피는 '모든 것'을 담고 있었기에 그것도 섭취하는 것이었지만, 피만 섭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갓 재구성된 미숙한 뱀파이어들은 피와 같은 형태가 아니면 감정을 흡수하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흡혈을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감정을 주식으로 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햇빛은 더 이상 그들을 상처주지 못하고, 성직자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강제로 소멸당하지 않는 이상 노화가 없는 뱀파이어는 죽지도 않았다.
재구성된 뱀파이어부터는,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천적이 없는, 최상위의 포식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을 밀어내고 이 지구의 꼭대기에 설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것은 뱀파이어를 포식하는 존재는 뱀파이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며 뱀파이어는 점차 강해졌다. 그리고 마모됐다. 쉽게 생각해보자.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더라도, 그걸 매일매일 먹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삶은 뱀파이어들 역시 그것을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힘을 얻는 뱀파이어는, 그 감정이 다양할 수록 즐거워했고 섭취하며 희열을 느꼈다. 피를 빨지 않아도 되는 뱀파이어들이 굳이 흡혈을 하려드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협당하는 불안, 공포, 죽음을 앞에 둔 절망, 그리고 뱀파이어 특유의 페로몬 때문에 죽기 전 오히려 상승하는 성욕. 온갖 감정들을 다이렉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흡혈은 온갖 감정에 익숙해진 뱀파이어들에게는 매우 드물게 먹는 맛있는 식사였다.
그러나 흡혈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한때였다. 뱀파이어의 삶은 아주 길었고, 흡혈 역시 질리게 되어 있다. 더 지나면 감정조차 흡수하지 않아도, 생존에는 문제 없을 때도 찾아온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일상의 반복. 자극 없는 긴 세월은 최상위 포식자인 뱀파이어조차 마모시켰다. 시간은 가장 무서운 적이었고 뱀파이어들은 그 시간에 패배해 자기 스스로 자살했다. 마모될 정도로 오래 산 뱀파이어들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사망하기 어려웠기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곤 했다. 용암에 뛰어들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위치를 계산해, 성층권에 운석이 부딪쳐 불에 타버리기 전 그 운석에 제 머리를 부딪치거나. 그 뱀파이어들은 모두 행복하게 죽었다. 적어도, 그 최후의 최후만큼은 '겪어보지 못한 자극'을 겪는 것이 가능했기에. '재구성된 뱀파이어'의 죽음은 그랬다. 그리고, 일부 '최초의 뱀파이어'의 죽음도.
최초의 뱀파이어는 재구성된 뱀파이어와 달리, 피교환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이 낳은 자식들이었다. 정당한 인과율에 따라 태어나지 않은 외도의 존재들은 부모가 없었고, 본능적으로 자신들은 자식이 될 수는 없으나 부모가 될 수 있음은 알았다. 그것을 깨닫고 수많은 인간들과 피교환을 해 뱀파이어를 만들었고, 그 뱀파이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인간들 사이에서 뱀파이어에 대한 소설이 쓰여질만큼, 한때는 뱀파이어들이 많았던 때도 있었다. 그들의 가장 치명적 약점, '마모'를 알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었지만. 재구성된 뱀파이어들은 맥없이 자살로 죽어나갔다. 더 일찍 마모되었던 최초의 뱀파이어들은 원래 강했기에 좀 더 오래 버텼지만,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키워내도 그것들의 최후는 결국 죽는 것으로 결정됐다는 것을 알고는 역시 자살이란 방법을 택했다.
- 뱀파이어란 건 자연의 허락을 받아 태어난 존재가 아니지. 그래서 결국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아무것도 남길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그렇게 죽어서, 언젠가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거야. 허무의 존재, 그게 바로 우리야.
윤호는 얼마 전, 그러니까 뱀파이어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찰나나 다름없는 50년 전 자살한 동기를 떠올렸다. 최초의 뱀파이어는 고작 일곱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은 것은 윤호 하나였다. 차라리 일찍 자살하는 것이 나았을까. 윤호는 다른 여섯에 비해 조금 더 '참을성'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자살할 때도 기다렸고, 그 동안에 더 마모되어버렸다. 지금의 윤호는, 자살하는 것마저도 색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모가 되었기에. 윤호는 지상에 적이 없는 최강의 존재가 죽지 못해 살고 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 라는 생각을 매우 감흥없이 기계적으로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차라리 누가 자신을 죽여준다면 어떨까.
- 그렇지만 누가 뱀파이어를 죽일 수 있겠어?
뱀파이어를 죽일 수 있게 만들면 되잖아.
- 누가, 네가?
그래, 이 정윤호가. 나는 뱀파이어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 자살하기도 귀찮아하는 네가 그걸 '알려줄 의욕' 같은 것은 없을텐데?
아니, 있다. 나는 뱀파이어들을 키웠었지.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어. 그래서 더 이상 거기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하지만, 나는 나를 죽일 존재를 키워본 적은 없어. 내가 키워낸 존재가 나를 죽이는 건, 아주 색다른 일이니까 적어도 나를 어느 정도는 자극할 수 있을거야. 그건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마모된 내가, 적어도 '죽고싶어질 정도의 감정'은 되찾게 해줄테지. 그래. 순순히 죽어주면, 이 허무함도, 고독도, 그로 인한 고통도 끝나는거야.
윤호는 웃었다. 그럼, 이제 자신을 죽일 존재를 양육할 시간이었다.
*
윤호가 선택한 건 어린 소년이었다. 뱀파이어는 원래 아이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뱀파이어들보다 훨씬 죽음을 가깝게 여긴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들을 아낀다. 뱀파이어는 아니었다. 불사를 사는 존재들에게 미래는 그저 그들의 현재가 될 어느 날에 불과했다. 아이는 그저 인간들 중에서도 특히나 약한 존재, 무력한 존재. 그 정도 의미밖에는 없었다.
특히나 윤호는 더욱 그랬다. 보통의 뱀파이어는 흡혈을 할 때 아이들을 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볼이 발갛고 통통한 어린아이들은 아직 힘이 약한 뱀파이어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더 원초적인 공포와 비명으로 뱀파이어들을 흡족하게 해 주었으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뱀파이어로 태어난 존재인 윤호는 애초에 그런 아이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이토록이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윤호의 길고 긴 생애 중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렇기에, 윤호는 처음의 목적 이상으로 소년을 통해 색다른 자극을 흠뻑 느끼고 있었다.
가족을 잃고 창민이라는 자신의 이름만 간신히 기억하는 소년을 윤호는 말부터 다시 가르쳤다. 어휘력이 한층 풍성해지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며 윤-호- 하고 이름을 불러오고, 크고 맑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며 안아달라고 서슴없이 손을 뻗어오는 그 존재는 낯설고 재미있었다. 인간은 장수가 축복이라고 하지만, 이미 지독히도 오래 변하지 않고 장수해온 윤호는 오히려 짧게 사는 대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인간' 쪽이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몽정이란 걸 하고 놀라서 훌쩍훌쩍 우는 소년을 봤을 때는 몇천, 아니 몇만년 만에 처음으로 웃음이란 것을 지어보인 것도 같았다. 창민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윤호가 온갖 진귀하고 풍요로운 것들에 휩싸여 보냈던 그 어떤 시간보다 자극적이고 황홀했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존재인지.
무려 정윤호를 당황시킬만큼이나 말이다.
"안아달라고, 했잖아요. 내가, 내가 아빠를, 아니....당신을."
그리고 한 호흡.
"좋아한다고."
정말로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윤호는 인간이라고 해도 방심하지 않았다. 뱀파이어를 키울때만큼이나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창민이를 키웠다. 자연스럽게 뱀파이어에 대한 적대감을 기억할 수 있도록, 창민이의 가장 좋은 보호자가 되어서 자신 역시 뱀파이어를 혐오하는 양 연기했다. 나도 아빠처럼 나중에 뱀파이어를 없앨래요. 라고 창민이가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을 고를 수 있도록. 거짓말도 아니었다. 윤호는 때때로 종족의 수치나 다름없는 '감염된 존재'들을 없애는 모습을 창민이에게 보여주었다. 보통은 감염시킨 뱀파이어의 일이었지만, 윤호는 모든 뱀파이어들의 부모나 다름 없는 존재.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알게모르게 그러면서 뱀파이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 뱀파이어는 햇빛이나 십자가로 충분히 퇴치할 수 있지만, 그보다 상위의 존재는 은총알을 심장에 정확히 박아넣어야 한다던가, 그보다 강한 존재는 성수에 적신 십자가로 기절시켜 용광로에 던져 녹여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던가. 차근차근 에스컬레이트해 마침내 자신을 죽일 방법을 알려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안 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창민이에게 죽음을 당할 생각이었다. 가장 혐오하는 뱀파이어를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자신이 가장 따르던 보호자요 '아빠'였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그건 마지막을 아주 즐겁게 해줄 색다른 자극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것을 계획하는 동안, 이런 건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고 생각했다. 태연한 척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윤호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같은 자신에게 고백하는 소년의 배덕감과 죄책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기지 못하는 이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부정적 감정이 아닌 이상 뱀파이어가 인간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서. 뭐, 꼭 알아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보다는 지금의 유희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윤호는 씩 웃었다. 제가 고백한 주제에 발발 떨리는 그 눈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소년의 입술을 빼앗았다. 놀아주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그게 중요하니까.
*
(중략)
아마도 씬, 씬, 많은 씬. 애기 울리는 나쁜 남자 뱀프 윤호. 윤호는 유희고 심창민은 사랑이니 감정의 무게가 같을 수가 없음. 윤호가 여자 만나기도 함.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어서 그게 왜 문제인지 모름. 속앓이하던 창민이한테 천진하게 너도 만나면 되잖아. 라고 말해서 속 뒤집어놓기도 하고? 그래도 점점 몸 섞으며 자기가 '섭취'하던 감정하고 다른 농밀한 감정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됨. 그러다가 지가 말한대로 자기가 여자만나면 따라서 여자만나러 가는 심창민때문에 질투잼.
*
이게 '질투'라는 거였구나. 윤호는 생소함을 느꼈다. 인간의 감정을 섭취하면서 느낀 질투와, 자신이 직접 그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정말로 달랐다. 윤호는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그 감정을 빨아들일 수 있었고, 그건 윤호에게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심창민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 달랐다.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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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두 가지 생각해놓고 있었는데 뭐 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마감시간이 되었다ㅇ0ㅇ 미완잼 나는 설정병을 버려야 시간내 글을 쓸텐데! 아무튼 저래서 정윤호가 심창민한테 독점욕 드러내고 심창민이 니가 먼저 나한테 그렇게 하라며 하고 한 마디도 안 지고 받아치고. 밀당 쩔게 하다가 정윤호가 좀 후회도 하고 역시 나를 죽이는 건 네가 되어야겠다고 정체도 밝히고 그것 때문에 또 혼파망이 오고.... 그래도 결말은 둘이 행복한 결말 주고 싶었는데
첫번째는 창민이가 함께 뱀파이어가 되는 결말. 잠깐 끝에 쓴것처럼 네가 빨아들이는 감정과 느끼는 감정은 다르니까. 자기가 계속 옆에 있으면서 뭐든 함께 해주겠다고. 그러다 둘 다 우리 너무 무료해지면, 서로가 서로를 죽여주자고. 그건 정말 아무도 못해본 경험일 테니까. 언제든 즐거움으로 남겨둘 수 있고 언제든 너도 나도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다고 그렇게 약속하는 메리베드 느낌?
두번째는 정윤호가 심창민을 뱀파이어로 만들지 않음. 이 아이마저 마모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대신 너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겠다고 말함. 의지라는 걸 가져보겠다고 말함. 네가 환생해서 다시 태어나면 내가 너를 꼭 찾겠다고. 두 사람 운명의 끈을 묶어놓는 걸로 종료. 정윤호는 자연의 인과율에서 벗어난 존재라 그런 것도 할 수 있음. 지금까지 할 필요가 없었을뿐(...) 아무튼 그래서 결말은 다시 태어난 어린 창민이를 젊고 잘생긴 남자가 찾아와서 아련아련한 눈으로 쳐다보는 걸로.
를 대체 어떻게 한시간 안에 쓰려고 플랜 짠거냐 나새기 감 찾아라.....
쓰면서 생각한 이미지는 태양화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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