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J.K.롤링 여사의 해리포터 세계관을 차용했습니다. 






알 수 없는 애였다. 심창민은. 



호그와트 입학 이후 작든 크든 속해있는 모임 대부분의 대표를 역임하며, 각종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 온 정윤호에게 있어서 대다수의 인간은 쉬이 파악이 가능한 존재였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윤호는, 아주 사소한 행동거지나 내뱉는 단어로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어떤 성격과 어떤 습관을 갖게 됐는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할 때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고할지를 빠르게 캐치해낼 수 있었다. 



단, 심창민을 예외로 하고. 





정윤호와 의문의 신입생 

(161204 #동방신기_전력_60분, 키워드 ‘목도리’)





정윤호와 심창민은 그 극과 극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혈통 자체는 동양인이지만 속해 있는 가문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귀족 가문이라는 것. 다만 똑같이 작위가 있는 귀족가문이라 하더라도, 둘의 자라온 환경은 극과 극으로 달랐다(그래서 성격도 그렇게 달라졌을 것이다). 



정윤호는 그야말로 본투더 도련님으로 자라왔다. 영국의 순수혈통 가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윤호의 가문은, 거의 100여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도 가계도에서 머글이나 스큅의 존재를 찾기 어려웠다. 순수 혈통 가문들이 그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몇 안되는 가문끼리 혼인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모두가 친척관계가 되는 게 당연하다곤 하지만 윤호네 가문은 좀, 그 정도가 심했다. 윤호의 증조부 부부가 유독 금슬이 좋았던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위즐리 가문만큼이나 자녀를 많이 낳았고, 그 자녀들 모두가 마법사 가문과 혼인했으며, 덕분에 그 손자 대에서는 근친혼을 하지 않는 이상 마법사인 결혼상대를 찾을 수가 없는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야말로 머글의 피를 가문에 수혈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중대한 기로에서 가문이 선택한 것은 차라리 언어도 피부도 다른 먼 이국의 마법사 가문으로부터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윤호의 아버지는 동양의 마법사 가문에서 결혼상대를 찾았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윤호였다. 태어날 때부터 숨쉬듯 마법 속에 둘러싸여서 살아온 도련님. 



그런가 하면 심창민은, 순수혈통의 피를 잇고 있다는 것까지는 정윤호와 동일했다. 다만 심창민은 호그와트의 입학장을 받기 전까진, 마법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머글보다 동양의 마법사를 선택한 윤호의 가문과 달리, 창민이의 아버지쪽 가문은 백인이 아니면 결코 결혼을 허락지 않았던…음, 창민이에게 아버지는 딱 잘라 조부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허락을 받으러 간 창민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부모로부터 꽤 혹독하게 혼이 났고, 결코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독설을 들어야 했다. 다만 창민이의 조부모가 생각지 못했던 건 제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꽤 의지가 굳건했단 거였다. 꽉 막힌 부모를 설득하는데 시간을 들이기보단, 가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도망쳐 결혼할 만큼. 




윤호의 아버지가 많은 형제와 사촌형제를 갖고 있던 것과 다르게, 창민이의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었다(조부모가 동양인과의 결혼을 순순히 허락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이고이 기른 귀한 외동아들이 머리 굵어졌다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사랑의 도피를 했으니, 조부모는 당연히 펄펄 뛰며 돌아올 때까지 모든 지원을 끊었다. 그러나 조부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들의 아들은 제 아내를 사랑했고, 그 아내는 무척이나 수완이 좋았다. 마법세계에서 갖는 조부모의 영향력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머글로 살아가는데도, 부족함 하나 없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때문에 심창민 역시도 ‘도련님’으로서 모든 것이 갖춰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법이 빠졌다는 것만 빼면. 





*




마법이 없던 심창민의 어린 시절도, 호그와트에 입학한 후와 다름없이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창민은 참 얌전한 아이였다. 입덧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발도 거의 구르지 않아 성별감별 전까지만 해도 창민이의 부모는 당연히 얌전한 딸아이가 태어날거라 생각했었다. 태어난 이후로도 창민이는 얌전했고, 조용했다. 나가서 뛰노는 것보다는 책을 좋아했고, 아주 총명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을 차례로 읽어나가는 걸 보며, 창민이의 어머니는 “여보오~ 우리 아들 천재인가봐.”라며 흐뭇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흐뭇함이 불안감으로 바뀐 건, 보고 읽을 것이 없으면 그 얌전했던 아이가 순식간으로 돌변하는 것을 몇 차례고 겪고 나서였다. 읽을거리가 없으면, 창민이는 울었다. 아이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밥도 먹지 않고 하루를 꼬박 울어도 쉬지도 않았다. 창민이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면서도 “여보오~ 우리 아들, 가수가 될지도 몰라.”라며 긍정적인 발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정신승리를 하는 것과, 애가 뭔가 읽을거리가 손에 잡힐 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이는 새로운 책을 읽기 위해서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고급 단어까지 빠르게 습득했고, 집안에 있는 모든 책을 읽었다. 어느새 속독법까지 배운 창민이는 그걸로도 부족해했다. 오로지 새 읽을거리에 대한 탐욕으로 외국어를 배워 원서를 읽는 창민이의 총명함은 칭찬할 만 했지만 읽을거리가 없을 때 나타나는 아이의 불안증상은, 부모로서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읽을거리에 관심을 보이는 거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구독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집착하는 것은 ‘스토리’였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손에 이야기책이 있을 때 창민이는 세상 누구보다 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없을 땐…. 단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 호그와트 입학 전, 아직 창민이가 머글 학교를 다닐 때였다. 사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정규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것은 시시할 정도로 지식을 쌓은 창민이었지만, 의무교육과정이기 때문에 학교를 가야 했고 그건 창민이에게 참으로 비극이었다. 남들이 일년을 배우는 교과서는 창민이에게 단 30분도 즐거움을 주지 못할 짧은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결국 창민이의 부모는 창민이가 학교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도록, 가서 읽을 책을 잔뜩 가방에 챙겨 등교시켰다. 그리고 사고는 발생했다. 아이답지 않게 늘 뒷자리에 앉아(운동도 안하는 것 치고 창민이는 키가 컸다) 책만 읽는 창민이에게 시비가 걸린 것이다. 물론 창민이는 저보다 한참 정신연령이 낮은 꼬마들의 도발에 흔들릴 만한 아이는 아니었고, ‘나 책 읽고 있으니 떠들려면 맘대로 떠들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다만 창민이가 생각지 못한 건 아이들은 창민이의 생각보다 훨씬 유치하다는 거였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창민이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창민이가 집에서 가져온 책들을 숨긴다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 창민이는 가족만이 아니라 학교에도 확실히 ‘심창민은 건드리면 안 되는 애’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었다. 그 순하고 얌전하던 아이가 울고, 화내고, 따지는 것은 순하고 얌전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선지 더 무서웠다. 



호그와트의 입학장이 날아왔을 때 창민이의 부모님이 기뻐한 건, 창민이가 마법사라는 게 확인되어서가 아니었다. 가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마법사로서의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도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 그들에게 창민이가 스큅이냐 마법사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기뻐한 건 창민이가 행복해 해서였다. 늘 글로만 보던 ‘스토리’의 세계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에. 창민이의 부모는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아들, 진짜 마법 세계에 가면 지금처럼 책에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창민이의 부모는 입학장을 받은 창민이만큼이나 행복했다. 




*




창민이의 호그와트 입학으로 자녀에 대한 고민을 던 창민이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정윤호는 심창민으로 인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낯선 존재를 통제해야 하는 고민을 얻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정윤호가 유독 그 고민을 떠안게 된 이유는 정윤호가 심창민과 같은 기숙사이자, 룸메이트였기 때문이었다. 심창민과 정윤호는 나이 차이가 꽤 났는데, 어떻게 룸메이트일 수가 있느냐 하면 거기에도 또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있었다. 




*




정윤호랑 심창민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윤호와 심창민 둘 다 기숙사 배정식에서 모자걸이였다는 거였다. 정윤호의 경우 모자가 고민한 건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이었다. 순수혈통에 어렸을 때부터 꿈과 야망이 뚜렷했으니 슬리데린이 탐내는 건 당연했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성격이었으니 그리핀도르도 포기하지 않으려 들었고. 결국 승리한 건 그리핀도르였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싸움을 보고 있던 후플푸프가 “얘야, 넌 지하가 좋니 지상이 좋니?”라고 한 질문에 윤호가 “지상이요. 햇빛이 좋아요”라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기숙사가 지상에 있는 그리핀도르는 의기양양하게 “그리핀도르!”를 외쳤고, 기숙사가 지하에 있는 슬리데린은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가 하면 심창민을 두고 싸운 건 그리핀도르와 래번클로였다. 래번클로는 창민이의 책에 대한 욕망을 높게 평가했고, 그리핀도르는 창민이의 그, 책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라고 쓰고 똘기라고 읽는다)를 주목했다. 반면 슬리데린은 바로 손을 뗐고 (“저 아이는 야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 후플푸프는 윤호 때와 마찬가지로 지켜보다가 중요한 질문을 했다. “얘야, 넌 무슨 색이 좋니?” 창민이는 빠르게 외쳤다. “검은색과 흰색이요! 검은 것은 글자고 흰 것은 종이거든요.” “음…흑백을 제외하면?” “어……, 빨간색이요?” 로웨나는 항의하려 들었지만, 그리핀도르가 더 빨랐다. “그럼 넌 그리핀도르야!”




그렇게 해서 윤호와 창민이는 같은 기숙사가 되었고, 윤호는 당시 반장과 그리핀도르 퀴디치팀 주장을 겸하고 있던 만큼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이 많았다. 기숙사 안내라던가, 학교 시설 안내라던가, 수업에 대한 지도라던가. 마법사 출신들은 마법학교를 그리 어색해하지 않았고, 머글 출신들도 윤호의 친절한 설명을 잘 따라왔다. 예외가 있다면 창민이였다. 입학한 첫날부터 창민이는 기숙사에 입실하지 않고 다른 데로 빠지는 바람에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신기하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신입생이 대왕오징어가 사는 호수에라도 빠진 건 아닐까, 경악스런 소식에 모든 교수와 집요정과 관리인 필치와 야간수색을 하는 반장들이 학교를 뒤집고 돌아다닌게 무색하게 심창민은 아주 안전하고 조용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학교 도서관이었다. 



“이런 일은 – 맙소사, 이런 일은 - 믿을 수가 없구나! 어떻게 신입생이 학교 규칙을 모두 무시할 수가 있니? 내가 이 학교에서 몇십년을 가르쳐왔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학교의 교감이자 그리핀도르 기숙사 담당을 맡고 있는 변신술 교수 미네르바 맥고나걸은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반장으로서 신입생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창민이의 옆에 서 있던 윤호는 곧 이 신입생이 맥고나걸의 엄격한 야단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그건 착각이었다. 



“하지만 교수님, 학교는 학생들의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닌가요?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수면시간이 짧은 사람을 긴 사람에게 맞춰 억지로 재우는 건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그 시간을 유흥에 쏟지 않았고, 학생의 본분에 맞게 도서관에서 ‘학습’을 하는데 사용했는걸요.” 



반짝반짝, 안 그래도 크고 사슴같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소년은 얌전한 인생이 무색하게 말도 안 되게 패기 있는 변명을 말했고…그 패기는 그 맥고나걸마저도 입을 벙긋거리게 했다. 한참 입을 벙긋거린 맥고나걸은 ‘제가 뭘 잘못했죠?’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는 순수한 표정의 소년에게 더 설교를 늘어놓는 대신에, 순식간에 몇십년은 늙어버린 표정으로 “…그리핀도르 10점 감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또 무슨 혼이 쏙 빠질 말을 하려는지, 감점에 대해 뭔가 말하려는 창민이를 손짓으로 가로막으며 윤호를 불렀다. 



“…뭐랄까, 나는- 내가 너무 교직에 오래 있었던 걸까요. 이렇게 참신한 학생을 다루기에는 나이가 있어서…. 윤호 군. 잘 부탁해요.”



순수혈통가문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에 대해서는 늦게 알았으며, 책으로 얻은 지식은 풍성하고, 그 지식을 모두 자신의 취미생활 – 독서 –를 위해 사용하는 다루기 몹시 까다로운 신입생은 그렇게 정윤호가 감당해야 하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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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처럼 예쁘고 순진하게 생긴 신입생 심창민은 그 곱고 얌전한 외모만큼이나 평소 얌전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얌전함에 안심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엄청난 사고를 치고는 했다. 도서관의 금지구역에 들어간다거나, 도서관에 빨리 가고 싶단 이유로 이리저리 이어진 마법 계단의 위치를 바꿔 그리핀도르와 도서관 사이 통로를 생성해버린다거나 (그 때문에 통로 몇 개가 막혀 학교의 말썽쟁이 요정 피브스가 한동안 갇혀버리기도 했다. 피투성이 바론 외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피브스지만, 그 이후로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보면 슬슬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책의 표지를 바꾸는 마법을 개발해 사서인 핀스부인으로부터 당당하게 금지도서를 대출한다거나. 걸릴 때마다 왕창 기숙사 점수를 깎아먹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아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성적은 또 누구보다 좋아서 수업시간마다 기숙사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호에게 있어 창민이는 그러니까, 처음에는 말썽꾸러기에 통제되지 않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또 지나면 지날수록, 좋아하는 것에 조금…은 아니고, 많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걸 제외하면 좋은 아이인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도련님’으로 자라온 윤호와는 다르게, 창민이는 솔직하고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다. 책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어찌 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었다. 



- 왜 그렇게까지 해, 그냥 책이잖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어낸 이야기에, 어디 도망가지도 않을 글자에 왜 그렇게 집착해?


- 좋아하니까요.


- 아무리 좋아해도, 넌 너무 과해.


- 과하다는 기준이 뭔데요?




그 언젠가, 맥고나걸 교수님의 기분을 알 것 같다고 윤호는 생각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창민이에겐 아니었다.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빤하게 보는 눈동자는 순수하게 의문으로 가득차 있어서, 이 아이를 바꾸려 드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 선배는 영원히 살 수 있나요?


- 글쎄, 불멸을 탐한 마법사는 많았지. 마법사의 돌을 찾는다거나, 호크룩스로 안전장치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나는 아직 그런 시도는 하지 않았고.


- 음, 마법사의 돌에 대한 책은 재미있게 읽었죠. …는 다른 얘기고, 아무튼 삶은 유한하잖아요. 마법사의 수명은 머글보다 길다고는 하지만, 천수를 누린다는 보장도 없고. 언제 어디서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유한한 삶을 좀 더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나요? 




품위있게,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이 나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배워온 윤호에게 그런 창민이는 신선하고 재밌었다. 저런 애가 사랑을 하면,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겠다 싶기도 했다. 얼마나 솔직하고, 앞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져 사랑할까. 




창민이가 기행을 벌일 때마다 자신 역시 소환되는 일이 반복되며, 맥고나걸 교수가 윤호를 불러 반장에게 과도한 짐을 준 것 같다고 이제 창민이의 보호자 노릇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때 거절한 것도 그래서였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며, 반짝반짝 생기있게 사는 소년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창민이가 윤호에게 주는 감정은, 귀찮음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밥 먹자, 잘 시간이야. 라고 부를 때마다, 반짝반짝 빛내며 책을 보던 그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볼 때의 심장이 찌릿한 감각이라니. 아, 나는. 얘를. 윤호는 그렇게 처음에는 귀찮을 뿐이던 신입생에 대한 감정을 인정했다. 심창민은 여전히 윤호에게 알 수 없고,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다른 의미로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




책을 보느라 취침시간도 거부한 창민이니 식사시간을 거르는 건 정말 자주 있는 일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식사를 잘 챙기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윤호의 몫이었다. 저녁식사야 수업시간이 끝나고 이동할 때 확인하면 되지만, 아침식사의 경우 매일 일어나자마자 창민이의 방을 들여다봐야 하니 윤호도 윤호지만 창민이와 한 방을 쓰는 신입생들이 꽤 불편해했다. 하늘같은 선배님이 방을 자주 오니 신경써야할 게 한도 끝도 없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창민이에게 독방을 주기엔, 방문을 잠가놓고 애가 하루 종일 책만 보는 건 아니냐는 꽤나 신빙성 있는 문제가 제기되어 기각되었다.



“그럼 같은 방을 쓸게요.”


“괜찮겠어?”


“어차피 전 반장이라 독방을 쓰잖아요. 한 명 정도야 뭐.”




라고 해놓고 윤호는 꽤 후회했다. 창민이를 챙기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애랑 같은 방에서 잔다는 건,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에게 있어서, 음. 꽤나 자기 통제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창민이가 어려서 다행이었다. 아직 젖살이 포동한, 우유냄새가 날 것 같은 작고 고물고물한 아이. 또래치고 키는 컸지만, 윤호 역시 동기들 중에서 꽤나 큰 키에 속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다 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키가 더 커지고, 더 나이를 먹어도 윤호에게 창민이는 아이같을 거였다. 먹을 것도, 자는 것도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좋아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 그래서 더 미성숙하게 느껴지는 소년. 나는 네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책 말고도 좋아하는 걸 찾았으면 좋겠어. 






…그게 나였으면 좋겠어.





*





(퀴디치 에피소드. 언젠가는 쓰겠지…!)




환하게 웃는 윤호를 창민이는 새삼스럽게 눈부시게 바라보았다. 



“선배도 좋아하는 게 있었네요.”


“응?”


“매번, 위험하니까 아무리 좋아해도 조심하라고 하는 건 선배 대사였는데, 이번에는 제 대사잖아요.”




아무리 우승이 걸려있다고 해도, 너무 위험했어요. 스니치가 거기 있다고 하더라도, 정면으로 날아오는 블러저 방향으로 날아가다니 보다가 심장 멎는 줄 알았다고요. 오물오물거리는 창민이의 입술을 보며 윤호는 웃었다. 정말로, 정말로 기쁜 날이었다. 숙적인 슬리데린을 꺾었고, 우승컵을 확정 지었으며, 졸업하는 해 마지막 퀴디치 경기를 승리로 기록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기쁜 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것. 너는 책만 좋아할 줄 알았어. 책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을 줄 알았어. 그게 아니라서 기뻐. 내가 좋아하는 네가, 나를 걱정해줘서 기뻐. 





*




(중략)



N.E.W.T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졸업후 탄탄대로가 보장된 정윤호에 여자들이 꼬임. 심창민 기분이 싱숭생숭, 질투함.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윤호한테 화를 냄. 그리고 기시감을 느낌. 늘 책에서 봐오던, 질투하는 장면이 제게 오버랩됨. 스토리가, 읽기만 하던 것이, 자기의 삶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음. 그리고 질투하는 장면이 어떤 스토리에 나오더라…하면서 정윤호에 대한 자기 마음을 깨달음.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겪고 둘이 사귀게 됨. 이런저런 에피소드 풀기엔 이미 충분히 길어지고 있어서 생략.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도 키워드가 등장 안했다니 뭔일이래ㅠㅠ 





*




마음이 통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별해야 하는 걸까. 




어쩔 수 없었다. 심창민이 신입생, 파릇파릇한 1학년일 때 정윤호는 이미 5학년 반장이었다. 그 얘기는 창민이가 3학년을 마칠 때, 윤호는 호그와트를 졸업한다는 이야기였다. 내년부턴, 윤호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창민이는 벌써부터 허전한 기분이었다. 티는 내고 싶지 않았다. 책에서는 질투하고, 짜증내고, 그래서 연인을 괴롭게 하는 경우 대부분 그 이후 이별하는 장면이 따라나왔으니까. 창민이는 윤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좋은 연인이 되고 싶었다. 



“참지 않아도 돼.”


“윤호 선배?”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을 해가지고선. 나도 내년엔 너랑 같이 일어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잘 수 없다는 게 화가 나는데, 네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면 화를 낼 수가 없잖아.” 


“…선배도, 그래요?”




선배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잖아요. 나는 진짜 사고 많이 쳐서, 선배 힘들게 했는데. 그래서 나는 서운해해도, 선배는 안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고, 당연히 로맨스소설도 잔뜩 읽은 주제에 제 연애에는 서투르기 그지없는 어린 연인의 이마에 윤호는 쪽 소리가 나게 입맞춤을 했다. 




“너 때문에 힘든 건 네가 사고를 쳐서가 아니야.”


“……?”


“네가 어려서 힘들었지.”





그러니까, 빨리 커서, 졸업해서, 어른이 되어 줘. 그 때까지 잠깐의 이별은, 나도 열심히 참을 테니까. 뒤늦게서야 의미를 알아챈 창민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펑 터질 것처럼 되었다. 와아, 변태. 달아올라 따끈따끈해진 귀여운 어린 애인, 어린 후배를 보며 윤호는 웃었다. 그래서, 싫어? 질문에 곧바로 고개가 흔들린다. 도리도리. 힘주어 머리를 저은 덕에 살짝 헝클어진 숱 많은 고수머리를 쓰다듬으며, 윤호는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솜씨 있게 손을 움직이자, 붉게 달아오른 귓불과 가느다랗고 긴 목이 스트라이프 무늬의 빨간 목도리 사이로 숨어들었다. 




“뭐예요, 목도리?”


“응, 감기 걸리지 말라고.”



목도리, 그리고 장갑. 창민이도 분명히 손이 있는데, 윤호는 제가 다 둘러주고, 끼워주었다. 지난 3년간 그랬듯이. 먹을 것도, 자는 것도 챙겨줬듯, 입는 것도 그렇게. 



“나 없다고 너한테 신경 안 쓰면 안 돼.”


“…선배,”


“나 없다고 아프거나, 굶거나, 안 자서 쓰러지거나 하면 화낼거야. 아주 많이.”




나 학생회장까지 한 거 알지? 네 소식 전해줄 후배들, 아주 많다? 매일매일 부엉이 보낼 거야. 둘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창민이에게 둘러준 목도리의 한쪽이 윤호의 목에 감겼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은, 그렇게 목도리로 이어져 있었다. 앞으로 4년간은 떨어져 있어야 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함께인 연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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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 생각없이 아 해리포터 세계관으로 동방신기 보고싶다라는 생각으로 마구 써내려간... 

그래서 줄거리고 뭐고 없습니다 전 그냥 똘기넘치는 심창민과 그 똘기에도 불구하고 반한(=눈이 삔) 정윤호를 보고 싶었다구요

키워드인 목도리도 정말 끼워넣기 수준인데 이런 글로 정말 괜찮을까...는 너무 글 쓴게 없다보니 뭐라도 써야 할것 같아서... 너그러이 봐주세요. 

그래도 분량은 많이 썼어요 한글에서 확인해보니 원고지 64.3장인가 그렇더라구요 어쩐지 시간이 30분 가까이 오버됐더라 

중간에 퀴디치씬을 써보려는 시도가 아니었으면 시간 안넘겼을 듯....은 어차피 못쓸거 왜 써보려 했는지 흑흑 윤호의 멋진 퀴디치시합 활약은 상상에 맡깁니다



급조한 글만큼이나 후기도 수습이 안되어 마무리는 짤로. 






호그와트 느낌 난다고 해주세요




호그와트 느낌 난다고 해주세요...는 심창민이 망토스타일이라는거밖에 없지만



글에서는 잠깐 나왔지만 어쨌든 오늘의 전력 키워드는 목도리

목도리와 목도리 그리고 목도리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