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


(160604 #동방신기_전력_60분, 키워드 '새싹')




정윤호는 언제나 리더였다. 어렸을 때는 골목대장, 조금 더 커서는 학교에서 임원, 조금 더 커서는 광주에서 알아주는 댄스동아리를 이끌었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좀 더 규모가 커졌다. 에스엠 역대 역사를 쭉 훑어도 그때만큼 연습생이 많을 때가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도력을 선보여 군기반장을 맡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랜 리더 생활은 정윤호에게 특별한 능력을 하나 주었다. 


*


“야, 유로뽕! 이제 좀 말해보라니까!”


“에이씨, 형! 저 그 별명 싫어한다 했잖아요.”


“그럼 윤자가 좋아? 우리 윤자~ 형이 물어보는데 대답 안 해줄 거야?”


“안 해요. 귀찮아요. 저리 가요.”



서울 물이 역시 나빠. 광주에서 올라와서 순둥순둥하던 정윤호가 변했어! 어떻게 이러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오버스럽게 연습실 바닥에 누워서는 팔다리를 버둥이는 선배에게로 연습실의 시선이 집중됐다. 옛날 ‘순둥이’ 시절이면 그 시선 때문에 허둥거리며 대답해줄테니 좀 일어나보라고 달래려 들었겠지만. 이미 많이 겪은 지금은 상황 대응에도 익숙해져서. 정윤호는 태연하게 응대했다. 계속 그래보시죠, 라는 특유의 훗, 하는 표정으로 지켜봐주니 선배는 김빠진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턴다. 재미없어, 정윤호. 너 예전엔 안 그랬잖아.



“언제까지 계속 당할 수만은 없잖아요.”


“내가 너 괴롭혔냐.”


“아주 많이.”


“진짜 너 재미없어. 언제 이렇게 자란거야? 속에 능구렁이를 키웠네. 회사 기획팀이 너 데뷔 포기하면 주워가려고 침 흘린다는 게 루머가 아니라니까 하여간.”


“저 데뷔 포기할 일 없으니 루머 맞을걸요.”



정윤호는 딱 잘라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사실 직원들의 구애는 집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윤호는 직원들이 못내 갖고 싶어 하는 ‘눈’이 있었으니까. 



*



연예기획사는 많다. 연습생들도 많다. 그리고 ‘데뷔’는 연습생들의 꿈이자 기획사의 목표기도 하다. 언뜻 보면 같은 목표를 두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그 데뷔를 놓고 연습생과 기획사는 줄다리기를 하기도 한다. 데뷔가 공짜로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데뷔까지는 투자가 선행되고, 기획사는 그 투자를 성공시키는 게 목표다. 그런가 하면 연습생은 데뷔까지 투자를 받는 것은 이득이지만, 데뷔해서 뜻대로 투자가 성공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부담을 안게 된다. 물론 데뷔를 못해도 차곡차곡 빚으로 지워놓는 기획사도 있지만, 적어도 에스엠은 아니었다. 데뷔가 무산되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은 그냥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고 계약만 해지해 주었다. 그럼 그 비용은 다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역시 투자가 성공해서, 데뷔한 후 돈을 벌어오는 가수들이 회사에 주는 수익이었다. 수익이 많으면 매몰비용이 많이 들어가도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현재 에스엠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기존 아티스트들은 계약 해지 러쉬. 신규 아티스트들의 성적 좋지 않음. 비용 엄청 들어가는 연습생들은 역대 최다인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지만, 현재 회심의 하이리턴이 없는 상태에서 하이리스크가 너무 컸다. 직원들은 어떻게든 회계장부를 쥐어짜고 있었고, 그 와중에 주목받은 것이 정윤호였다. 정윤호는 귀신같이 어떤 연습생이 그만두고 싶어하는지를 알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언젠가는 그만두겠다고 하며 여지껏 투자한 비용을 전부 날리게 하는 법. 정윤호는 그걸 미리미리 커트해주는 데 선수였다. 


- 쟤, 마음 딴 데 가 있어요. 


군기반장이라 연습생들을 관리하면서, 때때로 정윤호는 보고를 올릴 때 그런 말을 하곤 했는데 항상 그 발언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처음에는 같은 연습생끼리 견제라도 하나, 라고 지켜보던 회사 관리팀은 정윤호의 그 관리능력에 홀딱 반해있었다. 선배 말마따나, 쟤가 데뷔 포기하면 얼른 이쪽으로 집어와야겠다고 손을 드릉드릉 갈 만큼. 너 가수할 생각 없지, 하고 윤호가 따끔하게 말해주고 나면 백이면 백 그 연습생들은 제 장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손을 털고 나가곤 했다. 언제고 그만둘 사람을 미리 솎아내서 매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건 회사로서는 쌍수들고 환영할 일이었고. 



인재는 환영이었다. 하지만 현재 회사에는 인재가 너무 많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인재까지 굳이 끌고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정윤호의 능력은 회사에게 찬양받기 충분했단 거다. 같은 연습생끼리도, 선배가 저렇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올 만큼 신기해하고들 있었고. 하지만 정윤호는 누구에게도, 자기가 어떻게 곧 그만둘 쭉정이들을 가려내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설명이 불가능한 문제였으니까.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자기 눈에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형.”


“응? 이제 말해주려고?”


“- 그냥 이것만 알아두세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대요.”



저게 알려달란 건 안 알려주고 문자 쓰고 앉았네, 라는 선배의 짜증을 피해 정윤호는 돌아섰다. 전 분명히 알려줬거든요, 선배. 정윤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선배의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이 올라온 새싹. 이파리 크기에 비해 줄기가 살짝 가늘어 꺾일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싹은 분명히 푸릇했고,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 같아 보였다. 



아무도 모르는, 정윤호만 갖고 있는 비밀. 

정윤호에게는, 그 사람의 ‘새싹’이 보였다. 




*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민지 몰랐다. 다들 머리위에 싹을 하나씩 올리고 다니다니, 회사 전원이 날 놀리려고 장난이라도 치나 싶었다. 회사만이 아니라 길거리 사람들도 다 싹이 보였고, 간만에 집에 갔을 때 여동생마저도 싹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어 너 대체 뭐하냐고 물었다가 요새 몸이 허하냐는 반응을 받고 나서야 뭔가 이상한 걸 알았다. 회사로 돌아와 꾸준히 관찰한 후에 알았다. 노랗고, 시들시들한 떡잎을 가진 새싹을 머리 위에 올리고 다니는 녀석들은 연습에 불성실했다. 눈이 번뜩번뜩해서 와 가만히 있다간 잡히겠다, 하는 위기감을 품게 해주는 녀석들은 떡잎부터가 푸르렀고 뿌리도 단단했다. 확신한 것은, 누릇한 싹을 머리에 올리고 다니던 녀석이 죽상을 하고 저 연습생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때였다. 간신히 시들시들한 이파리를 피워올렸던 싹은 그 순간 시들시들 갈색으로 물들며 사라져버렸다. 아, 의지가 없어지면, 포기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정윤호는 그 때부터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는데 선수가 되었다. 누가 잘 될지, 누가 악바리처럼 성공할지, 누가 그냥저냥 살다가 그냥저냥한 사람이 될지. 정윤호는 다 보였다. 



스스로의 머리에는 보이지 않는다는게 아쉽다면 아쉬웠다. 그래서 더, 보이진 않지만 푸른 잎을 가진 새싹이길, 단단한 뿌리를 가진 새싹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데뷔는 요원했다. 그래서 지치기도 했다. 이미 내 새싹도 시들어버린 건 아닐까, 보이지 않는 머리 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만큼. 



그리고 정윤호는 그 애를 만났다. 

심창민.




*



녀석은 이상했다. 새싹은 뿌리를 내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떡잎은 푸르진 않았다. 그렇다고 시들푸들하니 누르께한 색도 아니었다. 마치 갓 싹을 피운 듯한 연노란색? 수많은 연습생을 본 정윤호 입장에서도 처음 보는 색이었다. 그래서 자꾸 눈이 갔고, 그래서 실망했다. 얼굴도 귀엽고, 피지컬도 좋고. 타고난 재능에 비해 녀석은 이 길에 애정이 없어보였다. 



말을 할까, 말까. 

지금껏 말을 했던 다른 녀석들처럼 완전히 누런 떡잎을 가진게 아니었기에 정윤호는 망설였다. 데뷔가 엎어져 초조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유하게 넘어갔을거다. 하지만 데뷔는 엎어졌고, 정윤호는 초조했고, 그래서 유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정윤호는 까칠하게 말했다. 그렇게 할거면 당장 나가라고. 백여명의 연습생이 다 정윤호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특유의 지도력과 기합이 빡 들어간 군기반장표 충고를. 그리고 정윤호는, 또 희한한 것을 보았다. 처음보는 연노란 떡잎을 보여준 녀석은, 계속 정윤호에게 신기한 경험을 시켜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노오란 빛을 머금고 있던 떡잎은 순식간에 푸릇하게 물들며 줄기를 한층 굳건히 했다. 정윤호의 충고를 들은 녀석들은, 안 그래도 마음이 약한 녀석들이라 말을 듣는 즉시 갈색으로 쪼글쪼글해지는 떡잎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리고 얼마 안가 그만둬버리고 말이다. 



심창민은 아니었다. 떡잎은 푸르고 굳세졌고, 영 동작을 못 따라가던 아이는 이를 악물고 연습해 놀라운 속도로 진도를 쫓아오고 있었다. 정윤호는 좀 멋쩍어졌다. 그리고 좀 속상하기도 했다. 내 떡잎도, 저렇게 시련을 겪어가며 푸릇한 모양새가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엉뚱한 녀석에게 괜히 화를 낸 거 보니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애매한 감정 때문에 애매하게 대했고 두 사람의 사이는 그래서 애매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이였다. 데면데면하니 어색하던 둘의 사이가 어떻게든 변화하게 된 건, 데뷔조가 발표가 난 후였다. 




정윤호, 심창민. 두 사람이 같은 팀에 있었다. 




*



(중략)



“누가 막내한테 술 먹였어!”

“저저 정윤호 봐라. 이제 지 팀 됐다고 싸고 도는거. 야, 콜라 섞어서 쪼금만 먹였어! 남자가 그 정도는 먹어야지! 수학여행때 다 해봤을건데!”

“우리 막내는 안 그래!”



짜식은 다른 연습생들의 표정을 뒤로 하고 정윤호는 술에 취한 같은 팀 – 팀이 엎어지지 않는 이상, 함께 데뷔할 팀 – 막내, 심창민을 챙겼다. 심창민은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며 어느정도 일탈도 해 보고 자유로운 삶을 살던 또래들과 달리 철저하게 모범생의 길을 걸어오던 애였다. 선배는 쪼금밖에 안 먹였다고, 요새 그것도 안 먹어본 애가 있겠냐고 억울한 듯 말했지만 심창민은 안 먹어봤을 터였다. 정윤호의 예상대로 심창민은 첫 음주에 완전히 알딸딸해진 상황이었다. 얼굴이 새빨간게, 가까이 다가가자 볼이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게 느껴졌다. 



애기였네, 진짜 애기. 


댄스반 진도가 달라서 늘 멀찍이서 봤는데, 키가 멀쑥히 커서 다 큰 남자애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본 심창민은 진짜 애기였다. 볼이 아직 통통한게, 채 빠지지 않은 젖살은 말랑말랑하니 우유냄새가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어린데 열심히 했네. 그런 앤줄 알았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텐데. 정윤호는 씁쓸하니 그 때 제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막내를 부축했다. 업어주고 싶긴 한데 녀석도 키가 커서, 자칫하다 균형이라도 잃으면 대형사고였다. 다행인게 있다면, 녀석이 술 취해 개가 되는 유형은 아니라는 거였다. 심창민은 취하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얌전하고, 조용하고.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창민아.”


“네에.”


“왜 아무말도 안해?”


“형 앞에선 긴장해요.”


“내가 무서워?”


“무서워요. 혼날까봐.”




안 취했을 땐 입을 꼬옥 다물고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듣는 쪽이더니, 취하고 나니까 그 꼭 다물렸던 입이 좀 열렸다. 먼저 말을 하는 건 아닌데, 물어보면 제깍제깍 답을 했다. 병아리마냥 입을 짹짹 벌리며 말하는게 귀여워서, 이것저것 물어보게 됐다. 술 깨고 나서 기억이 남아있다면 형 왜 그랬냐며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 이전에 이 취한 상태에서 밉다고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정윤호는 그 알콜이 빌려다준 솔직함을 빌리기로 했다. 



“안 혼낼건데.”


“진짜요?”


“응, 혼낸 것도 형이 미안한데.”


“아.”



꼬박꼬박 잘 말하게 해 주던 알콜도 이럴 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는 창민이에게 윤호는 속을 좀 더 털어냈다. 



“그래도 형 무서워할거야?”


“-음.”


“응?”


“네에, 무서워요.”



어쩐지 힘이 빠진다, 싶어 윤호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한 번 멀어진 거리는 좁힐 수가 없는 걸까. 근데. 그게 아니다. 심창민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들킬까봐, 무서워요.”


“……?”


“무서운데, 멋있고, 동경하고, 그래서 보고 싶고, 그치만 보다가 혼날까봐 몰래 슬쩍슬쩍 보고. 또 그거 들킬까봐 무섭고.”



아니야, 안 혼내. 라고 말하는데 심장이 막 두근두근했다. 와, 그러니까 심창민. 너도 나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던거지? 나만 너 혼내놓고 신경쓰고, 내 시선 보면 도망갈까봐 몰래몰래 보는데 보다보니 또 귀여워서 자꾸 눈 가고, 그러다가 미움샀을까 시무룩하고. 그러던 게 아니란 말이지?



“무엇보다, 내가. 형을.”



그리고 심창민은 또 내가 처음 보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창민은, 태어나서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예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만큼이나 환한 빛이, 창민이의 머리에 뿅 하고 머리를 내밀고 있던 싹에 머물렀다. 빛이 사라졌을 때, 창민이의 머리에는 꽃이 피어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저것의 의미가 뭘까, 라고 오래오래 고민하게 만들었던 싹과 다르게 나는 그 꽃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내 고민했던, 내 머리위는 과연 어떻게 되어있을까, 에 대한 고민도 떨칠 수 있었다. 




아마도, 내 머리 위에는 창민이와 똑같은 꽃이 피어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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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장미♪


떡잎감별사 정윤호는 심창민의 사랑도 저 꽃으로 딱! 알았고 

그러니까 술마신 다음날 필름끊긴 창민이를 이케저케 잘 얼러서 연상의 매력으로 달달하게 녹여버리고

행복하고 다정하게 연애질을 했을겁니다 동방신기로 같이 데뷔해서 사내연애도 했겠죠ㅇㅇ


.......솔직히 넘 간만에 썼더니 제가 무슨 글을 썼나 모르겠네요. 그냥 보시는 분들 눈 버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새싹->어린거->애기호민! 을 연상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