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야왕>, 밤 9시 55분 방영

주다해(수애)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불우한 그녀의 환경이 그녀를 독하게 만들었다.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어머니의 시체와 사흘을 함께 보냈다. 그런 그녀의 '재수없음'은 전염된다고 세상은 그녀를 박대했다. 그런 현실이 지독히 싫었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다. 그녀 가는 길에 비단을 깔아주지는 못해도, 진창길에 엎어진 그녀를 일으켜 제 옷으로 닦아주고 제 등에 업어 언제까지 걸어가줄 사람. 고작 고아원에서 함께 했던 7년전의 인연으로, 장례 치러주고 대학 학비까지 대주는,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스러운 사랑을 하는 남자 하류. 그녀가 단란주점을 가는 꼴은 못 봐도,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려 제 몸뚱아리까지 호스트바에서 굴리는 이 착한 남자와 함께 하기에는 그녀의 야망이 너무 컸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이 너무 싫어, 복수하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하류를 버리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자신에게 비단길을 걷게 해 줄 '로또' 재벌집 막둥이 백도훈을 따라서. 아이도, 사랑도 잃고 '죽어버린' 남자 하류는 세상에 복수한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운명이 쌍곡선을 그리며 교차하는 그 시점에서, 남자는 쌓였던 설움을 터뜨린다. "왜 죽였어, 날 그 때 왜 죽였어!"



원작에 비하면? 한층 더 순결한, 한층 더 잔혹한

2013년 새해를 맞아 찾아온 새 드라마 <야왕>(극본 이희명, 연출 조영광-박신우). 14일 첫 방송된 드라마는 빠른 전개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회 첫 장면에서, 주인공인 하류(권상우)와 다해(수애)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상 초유의" 청와대 압수수색, 이를 진두지휘하는 하류와 그런 하류에게 이렇게 망신주는 것으로밖에는 복수할 수 없냐고 독기를 흩뿌리는 다해. 팽팽한 대립은 두 사람의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한참 시청자들이 숨을 죽일 때 제작진들은 '더 센' 카드를 꺼내든다. 금고를 여는 수애의 뒤에서 "영부인은 살인자"라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하류, 이윽고 왜 날 죽였냐는 울부짖음이 고요를 깬다. 그리고 뒤돌아서는 수애. 탕, 하고 울리는 총성.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 누가 누구를 쏜 것일까. 왜 둘은 그렇게 된 것일까. <야왕>은 그 과거를 파헤치는 드라마다. '현재'의 연인들이 왜 복수와 총성과 피로 얼룩지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야왕>은 그 절망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말이 정해져 있기에 그 결말까지 달려가는 과정은 멈칫거림이 없다. 전개는 숨막히게 빠르고, 그 전개에서 보여주는 사건들도 강렬하기 짝이 없다. 19금인 원작에 비해 자극적인 장면들은 잘려나갔지만, 그만큼의 개연성을 보강하기 위해 사건 하나하나는 더 잔인해졌다.

-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사랑_야왕의 '야'는 밤 야가 아닌 들 야다. 들이라고 해도 풀이 푸릇푸릇한 평화로운 들판이 아니라, 거친 야생의 황야다. 하류라는 이름처럼, 남자주인공은 그야말로 밑바닥을 구른다. 본업은 말을 기르는 일이고, 그녀 다해의 학교를 위해 무리하게 시작한 일은 호스트바다. 다해도 예쁘장한 공주님은 아니다. 재수없는 건 전염된다는 독한 말을 들을 정도로 궂은 인생을 살았다. 데리러온 엄마의 손을 잡고 하류 오빠와 헤어져 고아원을 나온 후, 새아빠에게서 몹쓸 짓을 당했다. 차 안에 연탄가스를 피워 놓고 자살을 시도한 엄마를 애타게 불러도 봤다. 그런 엄마는, 배고프지 말라는 유언만 남기고 죽었다. 엄마의 유언이 무색하게, 돈이 없어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사흘 밤낮을 새웠다. 장례 치를 돈이 없으니 엄마의 시체와 함께 그렇게 있었다. 하류가 데리러 올 때까지. 엄마의 사망신고를 마치자 끔찍했던 과거가 다시 덮쳐왔다. 새아빠가 돌아왔다. 도망쳐서 살아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공부 잘 했던 것은 돈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니 써먹을 수도 없다.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가난해서 공부를 써먹을 수 없으니 말짱 헛거다. 가난은 죄악이었다. 돼지죽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던져넣으며 다해는 독하게 변한다. 단란주점에 나가 일할 각오도 한다. 그걸 구해준 사람이 하류다. 제가 가진 것은 다 준다고 약속해줬다. 욕심 많으니까, 독하기로 했으니까 거절하지 않는다. 하류와 다해의 사랑은 밑바닥의 사랑이다. 가진 게 없으니, 가지고 있던 건 다 주고, 다 받고도 부족하니 철저하게 배신한다. "오빠, 나 돈 주고 사라."라고 말하는 속물적인 말조차 툭툭 튀어나오는, 거칠고 구질구질해서 더 신파스러울 수밖에 없는 안타깝게 가난한 사랑이다. 

- 차갑고 매끄러운 부잣집 속에 감춰진 비밀_백도훈은 티없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다. 백도훈을 둘러싼 세계는 행복하기 짝이 없다. 막둥이 아들을 귀여워하는 아버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누나, 아이스하키부 주장으로서 존경도 받고 있을 테고, '로또'라 불릴 만큼의 부잣집 도련님이니 사는데 부족함도 없다. 그러나 알고보면 도훈을 둘러싼 비밀은 질척하기 짝이 없다. 도경은 사실 누나가 아닌 어머니고, 아버지는 누나를 미혼모로 만드는 대신 손자를 아들로 속였다. 그 어두운 비밀이 도훈에게만큼은 철저하게 가려진다. 빛 속을 걸으며 살아온 도훈에게 어둠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은 다해다. 빈부를 뛰어넘은 애틋한 사랑은 결국 해맑았던 남자를 점점 망가뜨린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사랑이다. 사랑, 은 맞을까? 다해에게 있어 도훈은 그녀의 왕자님이다.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사랑은 확신할 수 없다. 도훈의 집은 다해와 하류의 그것보다 매끄럽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깨어져나갈 아슬아슬한 평화다.

- 같은 곳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여정_거친 들에 살았던 다해가 제가 살던 곳과는 다른 부잣집으로 이행하면서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1화에서 하류는 다해에게 너에게 어울리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원작에서도 그 대사는 자주 나온다. 네게 어울리는 미아리 쪽방촌으로 돌아가라고. 다해는 신분 상승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망가뜨렸다. 돌아가라는 것은 그런 이유다. 네가 저지른 것에 책임지라는 선고다. 돌아가기 싫은 여자와, 돌려보내야 하는 남자의 대립은 이후 후반부의 극을 끌고나가는 큰 줄기다. 



관전포인트


캐릭터_원작이 이미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캐릭터가 매력이다. 다해는 분명히 '쌍년'이지만 탄탄한 배경 스토리가 그녀를 쉽사리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그녀가 배고프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독하게 먹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류도 마찬가지다. 그가 왜 그녀를 사랑하고 그래서 복수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는 명백하다. 설득력이 있는 캐릭터가 움직이면 매력적인 스토리가 된다. 이 <야왕>이 기대되는 드라마인 것은 그 때문이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 기대된다. 지나치게 원작에 치중해 지루함이 없도록, 창의적인 캐릭터를 가미한 것이 변수다. 잘 된다면 120%의 효과를 발휘하나, 자칫하면 기존의 내용에서 설득력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흥행을 주관하는 '작가'라는 변수가 얼마나 활약할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_말 그대로 눈이 즐거울만한 화면은 얼마나 나올까? 백도훈네 집안이 일단 일순위로 꼽을만 하다. 하키, 요리 등 다양한 장면을 보여줄 연하남 백도훈이 대기중이고, 부잣집 '아가씨' 백도경도 기대된다. 동생 도훈의 엉덩이를 만지는 묘한 습관이 있다고 하니, 투샷도 제법 기대해 볼 만. 백도경 대 다해의 팽팽한 기싸움도 기대해볼 법 하다. 하류의 경우, 초반 '가난뱅이' 설정 때는 호스트바와 마굿간을 전전해 눈이  즐겁기보다는 안타까움이 들게 할 것 같지만, 본격적으로 복수 노선을 걸으며 도경을 유혹하고 이후 검사로 '재탄생'할 때는 제법 볼거리를 만들어낼 듯.

연출_스태프들의 역량이 좋다. PD는 말할 것도 없고, 1화에서 적절하게 배경음을 깔며 집중력을 한층 배가시켰던 음악감독의 역량도 돋보인다. 화면의 경우도, 적절한 호흡으로 치고 빠지며 전개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영부인으로 등장한 수애의 스타일도 단아하고 우아했던 만큼, 스타일리스트도 적절하다. 단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거의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 아직 1회밖에 하지 않은 입장에서, 앞으로의 방송이 모두 생방송이면 배우 및 스탭들의 체력이나 시간 상의 문제로 인해 좋은 드라마에 흠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예상 스포일러

원작에서 하류는 쌍둥이다. 어리어리한 발목을 가진 소년은 버려져 미아리 쪽방촌에서 자랐다.
원작에서 하류는 백도훈의 살인자로 몰리고, 감옥에 들어간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범죄자 하류가 다시금 복수를 결심한 건, 자기와 다르게 아버지와 살던 쌍둥이 형이 자신으로 착각당해 다해에게 살해됐기 때문이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으러 왔다가 졸지에 살해당한 형의 인생을 대신 사는 하류가 드라마에서도 다시 살아날 확률이 높다. 1화에서는 왜 점이 없어졌냐는 복선이 이미 깔렸다. 게다가 다른 직업도 아니고 검사로서 영부인인 다해와 만난다. 검사인 형의 인생을 대신 살고, 형의 여자친구인 고준희가 그런 위장과 복수를 도와주게 될 확률이 높다. "왜 나를 죽였어!"라는 울부짖음도 그런 뜻이 아닐까. 죽은 것은 형이지만, 결국 다해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하류니 말이다.


원작에서 도경의 캐릭터는 누나가 아니라 백도훈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없다. 백도훈은 마마보이다.
드라마에서는 도경이 누나로 살지만, '사실은' 어머니라는 설정이다. 아버지도 살아있다.

제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백도훈은 천진하고 구김살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미혼모인 딸을 용서할 수 없고, 그만큼 손자이자 아들인 도훈을 예뻐한다. 도경은 남동생이지만 사실은 아들인 도훈이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
원작에서 하류는 자신의 여자 다해를 빼앗아간 도훈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훈의 어머니를 유혹한다.
도훈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도경이, 다해의 옛 남자친구라 주장하는 하류에게 어떤 생각을 품을까?
다해와 도훈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를 이용하려 들지 않을까?
하지만, 원작처럼 도경이 하류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얽히고설킨 애정의 화살표들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게 되는 걸까? 예고는 한 가지 힌트만을 준다. 어떻게 되던간에, 철모르는 도련님 도훈은 이제껏 살면서 알지 못했던 상처와 증오를 배우게 된다.


원작에서 다해의 아이 아빠는 도훈이다.
원작의 다해는 도훈이를 살해하고, 하류를 그 범인으로 몬다.

도훈이는 온전히 신분상승의 도구로만 존재한다. 도훈과 다해 사이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핏줄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에게 '아들'을 보여주기 위해 다해는 도훈과의 사이에서 낳은 친딸을 버리고 몰래 남자 아이를 데려와 시어머니에게 어머님의 손자라고, 도훈의 아들이라고 소개해 하나밖에 없는 핏줄의 친어머니로서 백씨 집안의 모든 부와 권력을 이양받는다. 드라마에서 하류가 본격적으로 다해와 갈라지는 것은, 다해가 '자신과의 아이'를 부정해서다. 원작과 달리, 이번에 버려지는 친딸은 하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