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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08 영화 황금을 안고 튀어라 유료시사회 후기+리뷰 (스포일러 다량 함유)

옥돌비 2013. 10. 14. 15:40


일찍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나 늦게(!) 올리게 됐다. 글을 쓰는 거 자체가 너무 행복해서 하루에 포스팅을 몇 개고 할때도 있었는데 이제 그럴 정도의 기운은 안 남았나봄. 더 질질 끌다가는 또 됐어 나 아니어도 누가 올리겠지...가 될 것 같아 차떼고 포떼고 간략하게만 써 올린다. 기운 나면 또 장문으로 너절하게(...) 감정 그득그득한 글도 쓸 수 있겠지 응.....




황금을 안고 튀어라. 2013. 10. 10. 개봉
 


0. 


창민이가 황금튀 찍은게 언제였지, 라고 거슬러올라가니 무려 지지난해다.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창민이는 수만명의 관객들을 호령하는 동방신기의 멤버 창민과 북한 간첩 출신의 몸 둘데 하나 없는 모모타로 사이를 오가며 참 열심히 살고 있었다. 투어 뛰려면 체력을 붙여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젓가락처럼 말라가는 오빠 때문에 팬들이 한참 걱정할 무렵 오빠 영화찍어서 그런 거 같다고 일본쪽에서 소식이 나왔고 팬덤은 발칵 뒤집혔다. 물론 물밑에서만. 동방 팬질은 참으로 롤코이기 때문에ㅋㅋㅋ 일희일비하다간 아닐 경우 실망감이 너무 크다고 우리 확실할 때만 기뻐하자고 팬들이 고나리를 한 결과였다. 촬영 목격담이 나오는 동안에도 팬들은 설레발 떨지 말자며 참 참을성 있게 역할 확정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고 소식이 떴을 때 참 많이 기뻐했다.




첫 영화 출연, 게다가 로코도 아니고 묵직한 메시지의 범죄극, 그걸 모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로 연기해야 하고 심지어 본업ㅋㅋㅋ 인 투어에도 충실해야 했던 창민이는 많이 힘들었겠지만. 힘들어도 잘 해줬으면 했고 그리고 진짜로 창민이는 잘 했다. 공개되는 스틸컷 속의 창민이는 내가 알던 창민이였지만 또 내가 모르던 모모로서의 표정을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었고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게 아니었던지 영화로 상도 많이 탔다. 자랑스러우니까 안 까먹게 적어놔야지. 제36회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 제67회 일본 방송영화예술대상 우수 신인상, 제22회 일본 영화비평가대상 신인상. 바쁜 스케줄 탓에 시상식에 다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배우로서 일본 방송에 등장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창민이는 참 기특했고 예쁘고 그랬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봤으면 좋겠다, 하고 한국에서도 개봉하기를 많이 바랐던 것 같다. 최근 국내시장에서 일본영화의 흥행수준을 봤을 때, 특히 로맨스 아닌 영화는 거의 수입이 안 되는 것을 감안할 때 욕심 너무 내지 말자고 나를 다독이기도 했지만-_- 어쨌든 굉장히 뒤늦게가 됐어도 내 꿈은 이뤄졌다. 황금튀 국내개봉이다. 박수 짝짝짝.  



1. 


정식 개봉은 10월 10일이지만 큰 스크린에서 빨리 모모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10월 8일 있다는 유료시사회를 예매했다. 순식간에 매진되어버리는 바람에 이런 메뚜기같은 카아들! 싶었지. 그래도 기분은 참 좋았다. 모모를 한국에서 만나길 애타게 기다려왔던 사람들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내겠구나 싶어서. 확실히 당일날 아는 얼굴들을 참 많이 봤고ㅋㅋㅋㅋ 영화 시작 전 에벡 홀딩스의 로고가 뜨는데서 일반인들은 왜 저러는지 절대 모를 안타까운 탄성ㅋㅋㅋㅋ 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터졌던 게 재밌었고. 영화가 시작되고 너무 급작스럽게 창민이를 만나게 되서 깜짝 놀랐지. 그리고 2시간 10분. 나는 오사카를 누비는 여섯 남자들의 활극을 즐겁게 감상했다. 


사실 시작 전 나는 좀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 화면에서 크게 보는 만큼, 아무래도 영상이나 캡쳐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미숙한 점을 오늘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괜찮아 오빠 첫 작품이니까 내가 관대하게 봐줄게! 라고 나는 되도 않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하긴 못했으면 상 받지도 못했겠지 영화 심사위원들보다 내 눈이 더 높을 거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자만심이었다 그건 진짜.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창민이었지만 창민이가 아니었다. 키도 체격도 창민이가 맞는데 그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몸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녹아들어 사라질 것처럼 안타까운 느낌의 모모가 거기에 있었다. 특유의 우울한 필름 속에서 아이돌다운 반짝임을 완전히 숨기며, 오로지 모모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나온 배우들 모두 그랬다. 고다 역의 츠마부키 사토시는 정말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결코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캐릭터인데도, 아주 미묘한 동작과 표정으로 캐릭터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배우들이 자기를 완전히 죽이고 캐릭터에 몰입한 덕에, 나 역시 영화에 온통 몰입할 수 있었다. 고다의 눈으로 모모를 봤기에 훌쩍 큰 키의 모모가 안쓰럽고 가엽고 그리고 무언가 해 주고 싶게 처연했다. 모모의 눈으로 고다를 봤기에 고요한 그의 안에 뭉클거리는 감정에 손을 뻗어 닿고 싶었다. 다소 불친절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몰입해 영화를 볼수 있었던 건 열연한 배우들의 공이 컸다. 거기에서 창민이를 빼지 않아도 된다는 게, 팬으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점이다. ....는 너무 팬깍지인가ㅋㅋㅋㅋㅋ 아무튼, 미숙한 점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딘지 불행하고 결핍된 사람들이 황금을 목표로 곧 죽을 것처럼 헐떡거리며 달려나가는 이 작품에서 모모는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그러니까 정말 기대 외의 결과가 나왔는데....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했던 것은 연기 쪽이었지, 스토리나 연출 쪽이 아니었다. 원작 자체가 국내에도 매니아가 많은 다카무라 카오루 여사의 글이고. 감독도 <박치기>등으로 이름 높은 이즈쓰 감독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놓고 보니, 원작을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좀 더 매끄럽게 스크린으로 안착시킬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황금을 안고 튀어라, 는 카오루 여사의 초기작이다. 지금에 비해 보다 정제되지 않은 열기가 들끓는다. 무서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오사카의 풍경이라던가. 그리고 오사카니까, 로 설명될 수 있는 오사카 특유의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칠고 패기넘치는 에너지라던가. 나아가 등장인물의 과거에도 그 오사카라는 도시를 둘러싼 거리폭력배와 노동조합, 재일단체 등의 이권다툼과 역사를 섬세하게 녹여내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지만 또 그랬기에 그 갈데없는 에너지가 황금이라는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목표를 두고 달려나가는 스토리를 보다 묵직하게 해 줬다.


책과 영화의 차이점이 여기서 나온다고 해야겠다. 영화에는 상영시간이라는 게 있고 감독은 스토리를 많이 컷해 이를 맞춰야 했다. 그 때문에 등장인물의 과거나 감정선이 상당히 정리되지 못한채로 뭉텅뭉텅 잘라나갔고 이게 스토리를 상당히 불친절하게 만들었다. 이건 그리고 아마 번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오사카 특유의 거친 말투, 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 작가와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오사카'라는 배경의 매력이 훅 떨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들도. 예를 들어 노다의 경우는 '여자의 구멍을 파는 것보다 은행의 구멍을 터는게 더 매력적'이라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얌전해 보이지만 일견 거친 남자다. 영화에서는 얌전한 얼굴에 얌전한 말투가 되어버리다보니, 왜 이 사람은 황금을 훔쳐야만 하는가, 라는 절박한 이유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카오루 여사의 소설이 미묘한 남남간 관계를 잘 보여주기로 유명해서 부녀자 팬들이 많은 편인데(...) 원작을 볼 때부터 고다와 모모의 관계를 많이 기대했었다. 원작만큼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스토리 편집으로 감정선이 많이 잘려나간 것
치고는 둘의 관계는 꽤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츠마부키 사토시라는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가 소화하는 고다는 세상에 미련없는 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그 세상에서 유독 특별한 의미를 갖는 모모를 담담하게 애정하고 있었다. 말에서, 웃음에서, 스치듯 머리를 툭 어루만지는 그 손길에서 따뜻함이 배어나서, 함께 이입돼 모모를 더 사랑스럽게 볼 수 있었다. 모모가 고다의 상실된 신을 대신하는 인물이었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원작을 좀 더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하지만서도. 



3. (이 파트는 스포가 그득. 결말 스포까지 있으니 접어둠)





4. 







<황금을 안고 튀어라>는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를 한정된 시간 내에 한정된 공간에서 풀어내다보니 다소 불친절한 영화가 됐다. 더욱이, 일본영화 특유의 불친절함이 가미돼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범죄 영화라고 하면 보통 치밀한 준비와 가슴 졸이는 추격전을 상상하게 되지만, 황금을 안고 튀어라는 그런 스토리를 상상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는 영화다. 20년 전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은행을 터는 과정은 치열하다기보다는 끈적끈적한 땀내가 난다. 허덕허덕하는 숨소리가 느껴지게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좇는 느낌. 기승전결이 또렷해 훅 하고 몰아쳐서 박진감있게 끌고나가는게 한국형 범죄영화라면, 황금을 안고 튀어라는 일본영화 특유의 물흐르는 듯한 전개 구조를 지닌다. 사건이 있되, 그 사건을 클로즈업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건이 있고, 이렇게 전개되고. 그렇게 툭툭 건드리며 진행되는 불친절한 연출 속에 불편한 주제와 메시지가 삐죽히 머리를 내밀고 있고, 그걸 읽어내는 것은 즐기는 이에게는 재미있지만 설명을 원하는 이에게는 답답할 수 있다. 배우들의 호연과 작가의 치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상당히 호불호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맛을 느낀다면 재미있는 영화다. 볼수록 곳곳에 깔린 복선이나 한정된 시간 안에 원작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 어떻게 우겨넣는 장치를 했는지가 눈에 띈다. 감독이 원작의 팬이었다던데, 원작 덕질을 하는 대신 칼같이 자를 데를 자르고 담을 데를 담았다면 어떤 내용이 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5.

모모는 정말 좋은 캐릭터야. 고다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모습도, 여장한 모모코의 모습도,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도, 죽음을 예감하는 모습도, 먹고 싶었던 고등어초밥을 죽기 전 허겁지겁 입에 넣는 모습도, 모모타로 동요를 배우는 모습도....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는다. 너무 예뻤고. 


예쁜 모습 보여줘서 고마워. 노력해줘서 고마워.
창민아, 수고했어. 

/ 2013. 10. 14 완성